삶의 멀미를 견디는 사람,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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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멀미를 견디는 사람, 예술가!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8.01.1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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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 산다는 것
박영택 지음 | 마음산책 | 1만5000원

예술가는 각자 저마다의 모습으로 삶의 멀미를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자신에게만큼은 혹독한 자기 훈련과 고독의 시간을 견디는 자들이다. 저자 박영택은 책 서문에 이렇게 말한다.

‘특정한 형태로 굳어진 가치에 안주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아나가는 것, 그러한 노력과 시도야말로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이자 예술가의 전제조건이다.’

미술평론가이자 경기대학교 교수인 박영택은 화가가 꿈이었지만 어릴 적 혹독한 병치레를 치르면서  소위 안전빵 직업을 원하셨던 부모와의 절충안으로 미술교육을 선택했다. 하지만 교과과정에 절망한 박영택은 금호미술관에서 10년 동안 큐레이터로 일하며 평론가와 교수로 활동한다. 그런 그가 오지에 살며 외부와의 접촉은 거의 하지 않는 우리 시대의 숨어 있는 예술가들을 찾아 나섰다.

“최근 우리 미술계는 어떠한 이론이나 이념 및 집단의 강령이나 그룹의 실천적, 행동적 움직임보다도 각 개인의 작업량과 사색의 시간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진실로 뜨이고 개인 눈과 마음으로 자연을 형상화하고 오늘의 삶과 현실에 올바로 대응해나갈 수 있는 정신적 비전인지 아니면 탐속적인 제스처로 유행화된 자연주의풍의 단순한 답습인지에 대한 가늠도 필요하지 않나 여겨진다. 다시 말해 원시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근원으로 돌아가 그림에 대해 본질적인 물음을 새롭게 던지면서 그림과 순수하고 정열적으로 맞붙어 싸우는 것이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이다”

단순히 세속의 연을 끊어내고 자연에만 몰입해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그림에 대한 물음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복잡한 문명의 도시를 피해 한가하게 작업에만 전념할 시간과 공간을 찾아 오지로 잠입한 작가들의 고독과 궁핍, 작업에의 막연한 기대를 안고 살아가는 작가들에게 그 공간에서의 버팀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먹고 산다는 생계의 문제는 이미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로지 작업을 하겠다는 일념 하나만이 그들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다.

단 한점이라도 작품다운 작품을 남기고 죽겠다는 김근태 작가의 일념은 흡사 구도의 행위와도 같다. 김근태 작가는 변변한 직업 한번 없이 20년을 오지에서 버티며 종교의식과도 같은 작업에 몰두한다. 지게 지고, 나무 하고, 물 긷고, 호롱불에 의지해가며 손가락 끝에 흑연가루를 묻혀 밤새 문지르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가난하고 고독하고 외롭고 기억해주는 사람도 많지 않은 김근태 작가를 생각하면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나하는 부끄러움이 든다.

한편 최소한의 생계로 작업을 이어가는 김을 작가는 금속공예를 전공한 후 회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1986년부터 본격적인 회화 작업에 들어섰다. 이후 작가는 그림 이외의 모든 군더더기를 버리고 그림과 삶을 일치시켰다. 목수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며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하는 작가다. 작가는 사람을 그리려면 사람을 그려서는 안 되고 산을 그리려면 산을 그려서는 안 된다고 한다. 즉 그 대상만을 보지 말고 그 주변을 함께 살펴야만 그 본질에 다다를 수 있다는 깊은 뜻이리라.

이 책에서 눈에 띄는 작가 중 한사람은 청주 근교 작은 초등학교 빈 교실을 작업실로 삼아 출퇴근을 하며 작업하는 김명숙 작가다.

박영택은 김명숙 작가를 ‘단식광대’라 표현한다. 유학에서 돌아와 오로지 작업실에 칩거해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 가혹하리만치 자신의 혼과 육체를 저당 잡히면서 그림에 몰입하는 단식광대…김명숙 작가다. 물론 작가의 그림을 직접 본 적은 없다. 책 표지 그림인 김명숙 작가의 ‘Grace & Gravity’를 보면 수없이 겹쳐 그린 선들의 조합이 그 자체로 삶에 대한 예의와 엄숙함을 보여준다. 이 작업을 하기 위해 작가는 무수히 많은 시간의 기억들을 견디어냈을 것이다.

박영택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대해 “그림 그리기란 자기애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가장 최고의 정치적 행위다. 삶의 형태 속에 동그랗게 말려진 순수한 일 말이다. 생산적이고 경제적인 노동이 아닌 한가롭고 여유롭고 권태로운 가운데 오로지 자기 안으로 깊고 절실하게 무작정 파고들어가 어떤 매력적인 덩어리를 만나는 일, 흡사 성애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는 그런 일이 예술행위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림에 대한 본질적 물음에 답하고자 자신의 작업에 몰두하는 이 세상 모든 작가들에게 간절한 안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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