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 쉬었다 가는 청정오지, 왕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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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쉬었다 가는 청정오지, 왕지마을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9.01.1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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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색깔있는 농촌마을 사람들

농촌마을 희망스토리-홍동면 수란리 왕지마을
회관에 모여 이바구를 나누는 마을 어머니들과 회관 거실에 모여 앉아 귤을 까 드시는 아버님들.

홍동면 수란리는 수란마을, 산양마을, 왕지마을 3개 마을로 구성돼 있다. 왕지마을은 왕지울, 왕졸이라고 불리며 ‘왕이 쉬었다 간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조선시대 이성계가 산양마을에 고려시대 충신을 신하로 삼기 위해 삼고초려하기 위해 머물렀던 곳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수란리를 감싸고 있는 구룡산은 아홉 개의 용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주민들 이야기에 의하면 아홉 개 산봉우리가 형성된 것은 일제강점기였다고 한다. 원래 구룡산은 용이 누워있는 형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산의 기운이 좋아 그 정기를 끊어내지 않으면 근방에서 큰 인물이 난다고 해서 일제가 강제로 산의 허리를 토막냈다고 한다. 홍성군에서 제일 높은 지대에 위치한 수란리는 홍동면 일대가 넓게 보이는 환경이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구룡산이라는 지명을 갖게 됐다고 한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개량사업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 정덕영 씨가 희사한 돈으로 왕지마을 주민들이 지붕을 개량하고 길을 내는데 많은 도움을 받고, 전기도 다른 마을에 비해 일찍 들어오는 등 주민들에게는 영웅 같은 존재라고 한다.

한 주민은 “그 분이 일본에 징용 갔다가 거기서 살면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다시 고향에 돌아와 마을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다. 지금은 그 조카가 산양마을에 살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왕지마을 구룡산 사태는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인데 정확한 연도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발생했다고 한다. 아침을 먹고 나왔는데 벼락같은 소리가 나면서 구룡산이 무너져 논으로 흘러내렸다고 한다.
 

오래된 왕지마을 창고. 왕지부락이라고 쓰여진 오래된 페인트가 시간을 느끼게 해준다.
살짝 열린 오래된 나무대문 사이로 벽에 걸린 농기계들이 눈에 들어온다. 홍동면 수란리에 있는 정덕영 씨 묘비.


왕지마을 주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했던 고개는 산제당 고개다. 산제당 고개를 넘으면 바로 수란리가 나와 3개 마을이 가장 많이 애용했던 길이다. 산신당은 산양마을에 위치하고 있고 지난 2016년까지는 수란리 전체 행사로 참여했으나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 

23살에 홍성 옥암리에서 왕지마을로 시집 온 김염순 씨는 “난 같은 홍성이니 모두 홍성 같은 줄 알았는데 여기 와 보니 아니데? 그래도 워떡혀? 살아야지”라며 그 오랜 시간의 흔적을 느끼게 해준다. 올해 79살이 된 신인철 씨는 “이제 떡국 먹었으니 한 살 더 먹었네”라고 웃으며 “아직 쉴 때가 아닌데 쉬고 있다”며 이내 가는 세월을 아쉬워했다.

왕지마을은 현재 40가구로 올해 안에 6가구가 더 들어올 예정이다. 마을이 번창하던 시절에도 45여 가구 정도 됐는데 시나브로 줄어들다가 요 근래 다시 귀촌 가구가 늘어나면서 예전 번창했던 시기의 가구수와 비슷해졌다.

왕지마을 복호순 이장

왕지마을 복호순 이장은 “예전에는 똘가에 다리 하나 없어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다녔다. 이후 구룡다리를 만들고 겨우 사람만 다니고 우마차는 강을 건너다녔다. 새마을운동 하면서 그래도 양식 걱정은 덜 하고 살았다. 그 세월을 어떻게 버티고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버스도 잘 다니지 않던 왕지마을에 버스가 하루 네 번 다니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이다. 마을의 한 주민은 “우리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내 죽기 전에 버스가 마을에 들어오려나 했는데 그래도 죽기 전에 버스가 들어오는 걸 보고 죽는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오지마을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폭설이 내리면 마을 앞까지 버스가 들어오지 못한다. 급하게 볼일이 있으면 수란리 큰 길까지 걸어가야 한다.

겨울이 되면 마을회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귤과 직접 말린 곶감을 나눠 먹으며 이바구를 나누는 마을 사람들의 훈훈한 정이 넘쳐나는 마을, 왕지마을이다.

홍동면 수란리 왕지마을 전경.
굽이진 농로를 따라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오는 어르신이 향한 곳은 왕지마을 회관이다.
왕지마을 정자. 왕지마을 표지석.
홍동면 수란리 왕지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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