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마을 사람들
상태바
거북마을 사람들
  • 전만성(화가, 갈산고등학교 교사)
  • 승인 2010.02.08 15: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가 전만성의 길따라 마음따라>
▲ 꽃. 유화. 40X20cm. 전만성

이번엔 거북마을 할머니 애기를 써야겠다. 지난 가을 들렀을 때 뵈었던 할머니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마을은 인적 하나 없이 조용했고 벌 나비만 꽃을 옮겨 다니며 욍욍거리고 있었다. 전에는 없던 메밀꽃이 새로웠고 백일홍은 색색으로 많이도 심어 놓았다. 한참이나 돌아다녀도 누구 하나 참견하지 않는 곳이 거북마을이다.

수령 500년은 됐을 느티나무는 이 마을의 수호신. 나무 아래에 서면 온 마을이 다 보인다. 평상에 앉아 콩을 까던 할머니, 약초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던 아저씨도 느티나무 아래에서 만났었다. 어느 해인가는 벌초 나온 분들의 점심밥을 나눠먹은 일도 있었다. 나물밥에 막걸리, 그리고 구수한 옛날 얘기를 풀어내시던 마을 이장님.

마을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죽 올라가면 오래된 기와집 한 채와 새로 지은 산뜻한 집 한 채가 있다. 거북마을 부녀회장님 댁이다. 길 위에서 처음 본 아내와 나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차나 한 잔 하고 가라고 끌던 부녀 회장님의 흔연한 마음 씀도 소박한 감동이었다.

'구산사' 앞마당을 지나자 바로 햐얗게 빛나는 서양식 집 한 채가 나타났다. 정갈하고도 편안해 보이는 집이었다. 길 끝에서 붉게 타고 있는 맨드라미를 화첩에 끼적이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양손에 짐을 들고 다가오셨다. 대개 낯선 사람들을 보면 경계부터 하던 시골마을 사람들을 생각하고 지레 언짢아져서 못 본 체 하려 하는데 할머니가 "작가 선생님이슈?" 한다. '작가 선생님' 이라는 말씀에 마음이 녹아서 내가 어디서 사는 누군지, 무엇을 하는지, 이 동네 사는 누구 하고 친한지, 묻지도 않는 것까지 다 말해 버렸다. 할머니의 얘기 속에 경계의 빛이 조금도 없으니 말이 술술 새어 나왔다. 한참 얘기가 재미있어지려는데 할머니가 보따리 하나를 남겨 놓고 슬쩍 가시는 게 아닌가. 하나씩 가져가려는 거겠지. 기다리다가 보따리 하나를 마저 들고 할머니를 따라갔다. 그런데 할머니가 들어가시는 집은 내가 방금 지나 온 서양식 집이었다.

할머니가 한참 만에 아이스크림 들고 나오셨다. 우유와 팥, 다른 맛이니 다 먹으라고 두 개를 주셨다. 내게 아이스크림을 주시려고 슬쩍 가셨던 거였다. 한꺼번에 두개를 먹어보기는 처음이었지만 거역하기도 어려웠다.

"자녀분들이 돈을 잘 버시나 봅니다. 이렇게 좋은 집을 지어 드린 걸 보면." 했더니 할머니가 그러셨다. 먹고살기 어려워 학교도 제대로 못 보냈는데 형제간에 우애 좋고 부지런하여 잘 사니 여간 좋지 않다고. '우애'라는 말이 반가워 여쭤보니 식구들끼리 싸우지 않고 큰소리 내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라신다.

이야기를 하다가 할머니가 불현듯 일어나서 광으로 가시더니 큰 병 하나를 들고 나오셨다. 과일즙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게 있더라는 거였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뭐를 줄까? 궁리를 하셨다는 말씀이셨다. 이 동네 아무개와 잘 안다니 주는 거라고, 두루 챙기시는 것이 품 넓은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셨다.
마을을 나오는 데 길가에 앉아 참을 먹는 아주머니들이 보였다. 앉아있던 아주머니 중에 한 분이 길 쪽으로 걸어 나오셨다. 부녀회 총무님이었다. 마을에 들어갈 때에 먼발치에서 나를 보았을 터인데 가까이서 보게 되자 알은 체를 하시는 거였다. 맛난, 찐 옥수수를 주시면서.

"뭘 또 주세요. 저쪽 집 할머니도 매실즙 한 병을 주셔서 가져가는데."
"잉? 언제 봤다고?"

인심이 살아있으니, 그곳이 바로 고향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