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사랑, 조손가정에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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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사랑, 조손가정에 관심을
  • 현자(광천여중 교사)
  • 승인 2010.03.0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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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를 잘 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월요일 수업에 들어갔다. 다들 잘 지냈나요, 물음이 끝나기 무섭게 "잘 지내기는요, 아이구 나, 짜증나서 죽는 줄 알았단 말예요!" 할머니와 사는 선아(가명)다. '왜?'라고 물어 볼 겨를도 없이 선아는 연거푸 쏟아낸다.

"아니, 어제가 일요일이었잖아요, 근데 우리 할머니는 자꾸 월요일이니 학교 가라구, 새벽부터 깨우고 난리였어요. 한 두 번이 아니예요. 우리 할머니는요, 일요일인지 월요일인지도 모르시나 봐요!" 그 말을 듣고 반 아이들은 철없이 깔깔대는데, 나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며, 잔뜩 볼이 부은 선아의 표정을 지그시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래 선아야, 그랬겠구나, 짜증이 날만했겠다.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와 살게 된 선아는 그동안 선생님들 사이 모범생으로 통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학교생활도 착실한 편이고, 손끝이 야물어 기초바느질을 시켜봤더니 요즘 아이들 같지 않게 솜씨가 여간이 아니었다. 머리도 영특하여 컴퓨터 작업 같은 것도 척척 해내며, 이따금씩 할머니 병수발까지 의젓하게 감당해 온 선아다. 그런데 그 착한둥이가 단단히 화가 난 것이다.

최근 여러 사유로 부부 이혼이나 별거 등이 늘면서, 관심학생(예전에는 결손가정이라 했으나, 부적절하다 하여 최근에는 이렇게 지칭해 본다) 수도 점점 늘고 있다. 이때 아버지든 어머니든 어쨌거나 한 부모와 기거하는 학생은 그런대로 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양육을 조부모가 맡게 되는 경우, 부모의 이혼·별거에 따르는 심적 타격에 더해, 연로하신 조부모를 도와 자잘한 가사일까지 해야 함은 물론, 사회 현상에 느린 조부모와의 소통 문제는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또 하나의 문제점이다.

그래서 어떤 아이들보다 조손가정 학생들은 이러저러한 대화의 창구가 부족하여 답답함을 느낀다. 내 업무와 관련성도 있지만, 나는 틈나는 대로 우리 선생님들에게 징검다리처럼 이 아이들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권유를 많이 한다. 실제로 '1교사 1학생 결연'도 가족사항을 고려하여 부족하나마 부재된 부모사랑을 체험하고, 세대의 차이를 극복해 보려 노력하고 있다.

지난 학기에는 조부모님들이 연로하셔서 손자녀를 외부로 자주 이끌어내기 어려운 점을 감안, 급한대로 조손가정 학생 열댓 명을 선발하여 교감선생님을 비롯해 여러 결연 선생님들과 함께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을 견학시키고, 용극장에서 뮤지컬 󰡐클레오파트라󰡑 공연을 관람하는 기회를 가졌다.

차안에서는 진로나 이런 저런 얘기들을 아기자기 나누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여느 엄마 아빠처럼 아이들 손 잡고 맛난 분식도 사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일회적 행사여서 아쉽지만, 모쪼록 이런 징검다리 사랑이 많이 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역사회의 따뜻한 관심 속에서 우리 학생들이 삶의 용기를 더욱 굳건히 갖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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