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배움, 그리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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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의 배움, 그리고 일
  • 김민경(풀무고 2) 학생명예기자
  • 승인 2011.08.25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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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하면 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 라는 말이 우리 학교에 있다. 이 말은 말 그대로 ‘일만하면 몸만 쓰는 소가 되고, 공부만 하면 머리만 쓰는 도깨비가 된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도, 도깨비도 아닌 사람이 되기 위해서 2주일간 현장실습을 다녀왔다. 현장실습은 학교에서 배운 농사일을 2주일간 다른 농가에 가서 그 곳 일을 하다가 오는 것이다.

‘왜 현장실습 갈까?’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장실습은 직접 현장에서 농사를 지어보고, 일을 배우고, 또 노동의 참 의미를 새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에 방학이라는 기간 동안 현장으로 일을 하러 갔다.

현장실습을 갈 준비를 하면서 땀 흘려 일하고, 일을 하면서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설랬다.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 중에는 농사를 직업으로 선택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또 농사라는 자체를 기피하고 도외시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이 현장실습으로 어떤 의미를 찾아올 수 있을까 기대도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현장실습이 더 가고 싶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고 이 경험으로 많은 걸 얻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또 걱정이 많았다. 농사를 짓는 곳에 가서 제대로 그 곳에 빠져서 일하고, 너무 힘들어 견디지 못할 것이 걱정되었다. 그런 걱정과 설렘을 가득 안고, 실습지로 출발했다.

내가 일하러 간 곳은 강원도 횡성의 ‘경성목양관’이라는 곳이다. 경성목양관은 가난하고 갈 곳이 없고 몸이 불편한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모셔 함께 소수 공동체 생활을 하며 사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먹을 것을 유기 농사를 지어 거의 자급자족을 하면서 살아간다.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은 모두 다문화가정이신 분들이다. 베트남, 필리핀, 중국, 태국 여러 나라에서 결혼한 분들이 오셔서 이곳 노인 복지를 돕고 농사일을 돕는다. 이분들과 함께, 2주간 콩밭, 감자밭, 마밭에서 잡초도 뽑고 순도 치고 감자 캐고 집안일도 하면서 땀 흘리고 웃으며 매일매일 일을 했다. 길게만 느껴지던 2주는 매일매일 일을 하면서 시간을 느낄 틈 없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그 동안 함께 일하는 외국인 언니들과도 친해지고, 그 곳에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도 정도 많이 들었다. 현장실습을 마치고 함께 일한 언니들과 전도사님께 인사를 드리는데 모두들 아쉬운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2주간 일을 하면서 걱정하던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내가 배우고자 했던 농사의 뜻이 어느새 몸에 스며들어 있었다. 처음 일을 할 때는 몸도 피곤하고 다른 것 생각할 겨를 없이 일만 하다가 서서히 농사와 노동, 그리고 함께 사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자본주의 시대에 농사는 판도라 상자의 희망 같은 것이었다. 스스로 일을 해 그 열매를 내가 먹고 또 이듬해 씨를 뿌리는 순환과, 욕심 부리지 않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참된 농사는 신선한 열매들을 만들어 냈고 건강한 농산물을 먹는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곳에서 돈이 아닌 일을 하고 열매를 수확하면서 지금 우리들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돈이 최고인 것처럼 사나 곰곰이 돌아보았다. 그러면서 농사는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지금 이 시대가 안타깝게도 느껴졌다.

이곳에서 사람과 사람이 함께 일을 하면서 인간관계도 많이 배우게 되었다. 다문화 가정을 꾸려 살아가는 ‘언니’들과도 말은 잘 안 통했지만 이야기도 많이 하고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함께 지내면서 무의식중에 있던 외국인이라는 편견들도 사라졌다. 봉사활동으로만 가서 한나절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도와준 게 아닌, 그 곳에서 2주간 그분들과 살면서 불편하기도 하고 또 즐거워하기도 했다. 매끼 식사를 챙겨드리고, 함께 지내면서 한분 한분의 특징도 알게 됐다. 처음엔 불편하기만 했던 분들도 나중에는 배려하면서 살았다. 같이 간 친구들도 역시 함께 일을 하면서 어려움도 있지만 그것 모두 우리가 이해하고 부딪히고 풀어나가는 길도 배우게 되었다. 흙을 만지고 함께 다른 사람과 살면서 정말 큰 것들을 배웠다. 물론 힘든 기억도 있지만 그 때마다 다시 일어나고, 힘든 만큼 또 다른 즐겁고 힘이 나는 순간들이 더 많았었다. 정말 소중한 기억이다. 또 다시 기회가 있다면 땀 흘려 일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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