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민주주의 위기와 우리나라
상태바
세계민주주의 위기와 우리나라
  • 전만수 본지 자문위원장
  • 승인 2011.09.08 14: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만수의 세상시평

영국의 폭동사태에 대하여 인디펜던트는 “사태 초기 정부와 경찰당국이 토트넘 주민들과 소통에 실패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공공지출삭감과 증세로 영국경제의 침체가 깊어진 데서 사태가 악화됐다”고 지적하였다. 실제로 영국의 5월 실업률은 7.7%에 달했고 지난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2% 성장에 그쳤다.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첫째, 경제성장의 둔화다. 계속되는 금융위기가 성장의 발목을 잡아 성장률이 횡보를 하면서 일자리가 줄어서 양산한 청년 실업률의 급증이 사태를 확산시켰다. 꿈과 낭만을 찾을 권리도 기회도 박탈당한 청년들의 절망적 좌절감의 표출은 극단적일 수밖에 없었다. 둘째, 다문화 이민자의 사회통합의 실패다. 과거 식민지시대의 지배와 피지배의 문화적 유산이 뿌리 깊게 작동되는 한 인종적 갈등이 치유되기에는 많은 세대에 걸친 사려 깊은 배려의 역사가 필요 된다. 셋째, 양극화로 요약되는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이다. 경제적 세계화가 만들어내는 모순 구조의 확대 재생산에 대한 항거다. 열심히 일해도 신분 상승의 기회가 엷어지는 희망 없는 사회에 대한 좌절의 표시이다. 넷째, 사회갈등을 치유하고 조정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 모델의 실패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 선진국의 제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다. ‘영국병’이라고까지 불렸던 과도한 복지요구와 재정의 불일치는 사회적 불평등을 확장시켰다. 건전 재정의 기조가 유지되는 복지만이 유효함을 다시 한번 교훈으로 일깨워 주고 있다.

오늘의 영국사태가 영국만의 문제로 귀착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녹아 있다. 이미 자본주의 시스템의 무력함이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국가와 정치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급격하게 하락하는 현상이 한두 해 사이에 전염병처럼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특히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2008년 뉴욕 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저성장과 금융파탄의 도미노는 남부유럽의 일부국가를 부도위기로 내몰고 유탄 우려로 EU의 인근 나라가 전전 긍긍하고 있다. 이 같은 경제적 위기의 근본 원인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가 문제라는 결론이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비효율성이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격이다. 국가 경제를 이끄는 메카니즘 즉 정치적 리더십 위기로 압축되는 현상이다.

세계경제를 혼돈으로 내몬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의 주요인이 여야의 극단적 대립에 의한 정치력 문제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 또한 최근 퇴진한 간 나오또 총리의 리더십은 세계인의 입방아에 올랐고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식물총리 상태로 연명해 왔다.

우리나라는 더더욱 영국의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내년에 예정되어 있는 양대 선거가 이미 복지전쟁으로 위기를 예보하였고 오는 10월에 있을 서울시장 보궐 선거판은 후끈 불을 지폈다. 그런데 그동안 있어왔던 통상적인 선거판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기존의 여야 정치판이 아닌 소위 장외주가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선거과정과 결과에 따라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권력구조 재편의 변수가 될 공산이 크다. 지난 9월 6일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장인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 변호사 지지를 밝히면서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39.5%를 지지받으며 1위를 달리던 안교수가 3%의 지지로 5위에 머무르던 박원순 변호사의 손을 번쩍 들었다. 극적인 시간차 공격에 제도정치권은 속수무책이었다. 안철수 교수의 통 큰 양보는 ‘대권을 향한 일보후퇴’로 성급히 분석되기도 하나 분명한 것은 정치권 불신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존의 정치권이 아닌 장외의 안철수 교수의 인기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의외의 충격일 수 있으나 국민에게는 희망의 미소다. 국민은 정치권에 대해 분명하게 ‘노(No)’라고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제도 정치권에 대한 경고 메시지다.

게다가 급격한 다문화 사회의 진입은 미래 사회의 소통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외국인의 연착륙 정착과 대국민의 의식전환을 위한 소극적 프로그램만으로는 부족하다. 2세, 3세에 대한 취업 등 소프트웨어적 장기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당대는 아니라도 한세대 이후에 영국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또한 세계화 물결의 파고가 가장 심하게 닥칠 수밖에 없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한계는 여러모로 난관이 예고된다. 삼성의 애플과의 법정 싸움이 한국경제의 어려움을 투영하고 있다.

어렵다고 우회할 수는 없다. 경제가 어려우면 정치를 흔든다. 정치권의 위기는 국가의 위기다. 좋든 싫든 정치는 국가구조의 최상위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이미 전달되었다. ‘불신’이라는 레드카드가 제시되었다. 이제 주사위는 제도 정치권에게로 넘어갔다. 단순한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아니다. 정치의 공멸이냐 공생이냐의 기로다. 역으로 여야의 상생과 신뢰 회복의 찬스다. 안철수 교수와 박원순 변호사의 조건 없는 단일화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할 필요는 없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정공법(正攻法)만이 신뢰를 회복하는 첩경이다. 위기의 기로에 선 정치권의 새로움은 국가미래의 희망이다.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