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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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0.03.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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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격리되는 삶을 살고 있다.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다. 이런 시국에 나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생각한다. 자발적으로, 스스로 고립을 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의 힘을 갖고 있다면 격리의 시간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만의 공간에 있는 고독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 여러 이미지들이 스쳐 지나갔다. 몇 분 후에 눈을 떴다. 평소 알아차리지 못한 흰색 천장과 전구, 그리고 벽을 채우고 있는 그림과 책들이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서너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다. 그러나 이 공간은 나에게 의미 있는 곳이다. 이곳은 울프가 말한 나만의 공간이다. 

울프는 20세기 영국의 여류작가이다. ‘자기만의 방’을 비롯해 ‘등대로’, ‘출항’ 등 다수의 책을 출판하였다. 특히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들이 열등한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경제적 요인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여성들은 육아에 전념하느라 돈을 벌 기회가 적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남자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경제적으로 남자에게 의존하므로 여성은, 신체적, 정신적, 지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남자에게 종속된 삶을 살게 됐다.

울프는 남자에게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분은 중상류층이었지만, 경제적으로 빈곤했던 울프는 숙모로부터 연간 500파운드의 돈을 상속받으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게 됐다. 자신의 방을 가질 수 있는 돈을 가짐으로써 창작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고 울프는 고백했다. 울프는 능력 있는 작가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지만, 평생 양극성 장애(조울증)로 고통스런 삶을 살았고, 평상시 좋아하던 우즈 강에 몸을 던짐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울프가 자살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어린 시절을 통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7세 때부터 24세까지 의붓 오빠들로부터 당한 성적 학대와 그것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가족들의 태도가 울프를 힘들게 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칭송받는 편집자요 자서전 작가였지만 매우 무서운 분이었고, 어머니는 울프와 정서적 교류를 전혀 하지 않는 무관심한 분이셨다. 그래서인지 울프는 어린 시절부터 결혼 전까지 어떤 감정도 표현할 수 없었고, 집을 감옥으로 표현할 정도로 힘들어 했다. 하지만 울프는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신을 8년간이나 기다려준 남편 레너드 울프와의 결혼생활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울프는 결혼할 때 남편에게 두 가지를 요구했다. 자신의 직업을 버리고 본인이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줄 것과 성적 요구를 하지 말 것을 제안했다. 레너드는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지만 그것을 수용함으로써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 타인에 의해 짓밟힌 울프의 상처 난 가슴은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수용해준 남편을 통해 변형되고 치유됐다. 울프는 남편과의 사랑을 통해 얻은 힘으로 글쓰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폭력에 의한 트라우마와 부모와의 불안정 애착은 울프의 삶을 여전히 힘들게 했다. 울프의 양극성 장애는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매우 고통스러운 질병이었다. 특히 조증일 때는 목소리가 커지고, 자신이 하는 일이 매우 잘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강하게 자기주장을 한다. 그러다가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면 우울감이 찾아와서 자살을 생각하고 시도하기도 한다. 울프는 그런 극단적인 감정의 균형을 찾지 못해서 마지막 소설 집필을 왕성하게 끝낸 후 우울증에 빠져서 남편에게 유서를 남긴 후 자살을 한 것이다. 
나는 울프가 조울증으로 매우 힘든 삶을 살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위대한 작품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쳐 준 점을 높이 평가한다. 특히 여성들에게 경제적 자립을 통해서,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정신적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도록 영감을 불어넣어준 점에 대해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땡큐, 울프.

그녀의 의견을 수용해, 나는 나만의 공간을 꿈꿨고 마침내 그 공간을 갖게 됐다. 하얀 벽지에 좋아하는 책을 꽃아 둔 책장, 누군가 방문했을 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푹신한 쇼파, 그리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조용히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하다.

당신이 지치고 힘들 때 쉴 수 있는 자신만의 방을 꿈꾸고, 만들기를 응원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강제 격리의 시간을 자기만의 방을 만드는 전화위복의 시간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파이팅.


최명옥<한국정보화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박사·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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