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봉산을 때로 오르고 내려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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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산을 때로 오르고 내려가며
  • 김창호 홍성조류탐사과학관 연구위원
  • 승인 2020.05.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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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산은 그리 높거나 큰 산은 아니지만 IMF 경제위기 이후 급증한 1000만 명이 넘는다는 전국의 등산인구들에게 잘 알려진 명산(名山)이다. 산을 좋아하는 산꾼들이 1년에 한두 번쯤은 반드시 찾게 되는 산이 충남 홍성에 자리한 용봉산이다. 작은 금강산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용봉산은 그 이름처럼 용과 봉이 어울리기 적당한 산이라고 보인다. 용거봉래(龍居鳳來). 용이 머무르고 봉이 날아온다는 상서로운 이름이다.

우리나라 땅이나 마을의 이름 대부분이 그렇듯 지명(地名)은 그에 상응하는 정체성을 갖는 것이 보통이다. 학야리(鶴野里)는 학이 오가는 들판이고, 온정리(溫井里)는 온천이 솟는 곳이며, 금강산은 석가의 깊은 뜻이 있고, 장백산은 흰색이 광대 장구하고, 묘향산은 오묘한 향기 속에 웅장하고, 설악산은 눈 속에 바위가 빼어남을 다투고 청초한 느낌을 준다. 두류산이라고 불리는 지리산은 넓고 커서 전북, 전남, 경남의 삼남을 두루 안는다. 한라산은 마치 은하수를 끌어당긴 것처럼 맑고 유현하다. 속리산은 세속을 떠나 있는가. 눈이 깨인 시인묵객들은 아니라고 한다.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으나 세속은 산을 떠난다고 한다. 도(道)는 사람을 멀리 하지 않는데 사람이 도를 멀리 한다고 한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들이다.

산 속에 있으면 나무나 숲은 보되 정작 산을 보지는 못한다. 산의 진면목은 과연 정상에 있는가. 높은 산꼭대기에 오르면 일망무제, 많은 것이 명쾌하게 보이고 연연해야할 작은 세상살이가 더 작아지고 포부는 더 크게 넓어진다. 그래서인지 진정한 산꾼들은 정상에 올라서야 그나마 자유와 행복을 느끼며 만족한다.

등반과 산행은 언제나 쉽지 않고 힘든 일이다. 산에 오르고 빠지는 것도 하나의 중독이다. 이런 경지를 마운틴 오르가즘(mountain orgasm)이라고 부른다. 산이 거기에 있으니 오른다. 기묘년의 영수 조광조(1482~1519) 선생은 “등산을 하면서 산꼭대기까지 가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비록 꼭대기까지 못가더라도 산허리까지는 갈 수 있다. 만약 산허리까지만 가려고 작정한다면 산 밑바닥을 벗어나지 않은 채로 반드시 그치고 말 것이다”라고 우리를 독려한다. 또한 UN 사무총장을 지낸 다그 함마슐드(1905~1961)는 “정상에 오르기 전에는 그 산의 높이를 재지마라. 정상에 오르면 그 산이 얼마나 낮은지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산에 오르는 정도(正道)가 항상 정상(頂上)에 오르는 것에만 있다고 할 것인가. 가다가 그만 두면 안 되는가. 힘이 들면 산중턱에서 그만 두는 것도 하나의 길이 되지는 않을 것인지. 스무 살 젊은 날의 초정 박제가(1750~1805) 선생은 장문의 빼어난 기행문 <묘향산소기>에서 “나의 귀는 다만 물소리와 낙엽 밟는 소리만을 들었노라”고 남다른 절제된 회포를 말한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어진 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강건하고 뛰어난 천혜의 자연, 기상이 높은 산을 자주 둘러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서시(西施)는 화장을 해도 예쁘고 분칠을 하지 않아도 미인이다. 본 받아야 할 우리 산은 비 오는 날도 좋았고 개인 날도 참으로 좋았다. 

저 산은 내게 무엇을 말하는가. 산을 찾는 것도 결국 우리 때 묻은 심성을 가다듬는 일이다. 천암경수(千巖競秀) 만학쟁류(萬壑爭流). 천 개의 바위는 빼어남을 다투고 일만의 골짜기는 흐름을 다툰다. 산을 찾고 이해하는 것은 그 외관에만 있지 않고 산을 찾는 사람의 국량이니 그릇에 달려 있다. 고산(高山)이면 어떻고 청산(靑山)이면 더욱 좋지 아니하였나. 고인들이 말한 “내 사는 곳에는 산이 없지만, 내 마음에 산이 없었던 적은 없다(吾居無山 吾目未嘗無山)”거나, “명산이 아니면 나를 머물게 할 수 없다”는 등의 깊은 뜻은 항상 명산과 대택(大澤)의 기운을 가슴에 쌓아두라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용봉산에서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태평성대가 아니라서 용이나 봉을 볼 수는 없지만, 우리는 마음속에 용과 봉이 함께 하는 또 하나의 용봉산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김창호<홍성조류탐사과학관 연구위원·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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