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례에 흐르는 인간존중 정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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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례에 흐르는 인간존중 정신〈1〉
  • 조장연 <성균관·철학박사>
  • 승인 2021.06.1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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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儒)’의 의미와 유학의 형성
유학은 하(夏)·은(殷)·주(周) 삼대 문화를 계승해 공자에 이르러서 정립된 학문으로 관점에 따라 다양한 명칭이 있다. 학문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두면 ‘유학(儒學)’이라고 하고, 가르침이라는 측면을 강조할 때는 ‘유교(儒敎)’라고 한다. 진리라는 의미를 강조할 때에는 ‘유도(儒道)’라고 하고, 이를 실현하는 방법적인 측면을 말할 때는 ‘유술(儒術)’이라고 한다. 한편 하나의 학파라는 의미로 규정할 때는 ‘유가(儒家)’라고 한다.

유(儒)의 기원과 의미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은 왕조의 종교 의식을 담당하던 관리에서 비롯한다는 견해도 있고, 종교적 지식인을 가리키는 ‘붉은 띠를 두른 선생(搢紳先生:진신선생)’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견해도 있다. 또한 은 왕조의 의례(儀禮)를 주관하기 위해 목욕재계하는 모습인 ‘수(需)’에서 기원한다거나, 주례(周禮)의 관직 제도에서 파생됐다는 등의 학설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대체적으로 유는 은 왕조 이래로 종교와 문화를 담당하던 지식층과 관련이 있다. 

유(儒)의 의미는 주 왕조에 들어와 종교적 색채가 점차 옅어진다. 주 왕조의 예법을 담은 《주례》에서는 “유(儒)는 도(道)로 백성을 얻는다”고 했고, 정현(鄭玄)은 이를 “육예(六藝; 禮·樂·射·御·書·數)를 익혀 백성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풀이했다. 즉 주 왕조에 이르러 유는 육예에 정통한 전문인이자 교육자의 의미로 정착됐다.

유(儒)는 춘추시대에 들어서면서 당시의 사회 현실에 맞추어 다시 그 의미가 바뀐다. 《논어》를 보면, 공자는 제자에게 “군자유(君子儒)가 되고 소인유(小人儒)가 되지 말라”고 했다. 즉 공자는 ‘군자(君子)’라는 측면에서 유(儒)를 재조명해 이러한 유의 계승을 시대적 사명으로 인식한 것이다. 비록 공자가 자신과 제자들을 유가(儒家)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뒷날 공자와 그 학문을 계승한 집단을 유가라고 하게 됐다.

지금까지 발굴된 갑골문에 따르면 은 왕조는 정치와 종교가 분화되지 않은 단계의 국가로서 최고신인 상제(上帝)의 존재를 믿었고 조상신을 숭배했다. 조상을 숭배하는 씨족사회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하겠다. 주 왕조는 은 왕조를 계승했으나 은의 지나친 종교적 성향을 인문적 정신으로 보완했다. 기록에 따르면, 은 왕조의 종교적 성격을 약화시키고 인문정신으로 보완해 봉건제를 완성한 것은 공자가 꿈속에서라도 보기를 간절히 원했던 주공(周公) 희단(姬旦)이었다. 문물제도를 완비해 주 왕조의 기틀을 닦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 왕조도 시대가 지나 주왕실과 제후 간의 유대가 약화되자 사회적 안정과 발전의 기반이었던 봉건제가 흔들리면서 점차 붕괴하기 시작했다. 사실 주 왕조의 봉건제가 흔들리게 된 역사적 원인은, 철기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뤄진 급격한 생산력 발전과 이에 따른 사회 변화이다. 이 시기를 보통 춘추전국시대(BC770-BC221)라고 하는데, 이 시기에 사(士) 또는 서민계층으로 문화가 보급되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려는 ‘다양한 학자와 학파(諸子百家)’가 등장했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사상이 정치와 윤리 문제에 집중하는 경향이 두드러진 것도 바로 이 시대정신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역사적 상황에 기인한 시대적 요구를 담고 있다고 해도 그 속에는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의 진리에 대한 추구가 담겨있었다.

공자는 이러한 시대정신과 보편적 진리를 동시에 대변한 최초의, 그리고 대표적 사상가였다. 그 역시 당시 주 왕조의 문화가 형식만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요·순 이래의 전통과 주 왕조의 인문적 문화 속에 담긴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적 가치에 주목한다. 그가 주목한 보편적 가치는 인(仁)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그는 인(仁)의 이념을 제시함으로써 주 왕조에 의해 전승된 예(禮)와 악(樂)이 참된 생명력과 현실적인 의미를 가지도록 했다. 이 이념은 곡부에 설립된 공자 자신의 학원에서 신분에 관계없이 받아들인 각각의 제자들에게 맞도록, 그러나 숨김없이 전수됐다. 그리고 그 제자들이 다시 각지로 전하게 되면서 이 이념은 유학이라는, 최초의 학파로 형성됐다. 요순과 삼대의 문화를 계승하고 이를 보편적 진리로 재조명한 공자와 그 제자들을 통해 동아시아 문명을 대표하는 ‘유학’이라는 학파가 탄생된 것이다.

자료제공: 결성향교 선비문화축전

 

조장연 <성균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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