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탈락 대상자라는게 인정하기 힘들었죠" - 김영숙(가명·73·홍성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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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탈락 대상자라는게 인정하기 힘들었죠" - 김영숙(가명·73·홍성읍)
  • 황희재 기자
  • 승인 2022.03.03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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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로 바라본 홍성 - 취업 경쟁에 내몰린 노인들①

노인 일자리 80만 시대 개막, 고용불안 경험↑
관내 일자리 모집인원 작년보다 113명 증가
전체 정원 늘었지만 모집인원 감소한 기관 ‘多’
불합격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 멍드는 가슴


■ 10년 전과 비교한 홍성의 고령화율
유엔(UN)은 총인구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Aging Society), 14% 이상이면 고령사회(Aged Society), 20% 이상이면 후기고령사회(post-aged society) 또는 초고령사회라고 규정한다. 총인구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바로 ‘고령화율’이다. 

홍성은 이미 오래 전 고령화율 20%를 넘기고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통계, 연령별 인구현황’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 2012년 1월 홍성의 65세 이상 인구는 1만 8385명으로 당시 총인구(8만 8146명)의 20.9%를 차지하고 있었다. 10년이 지난 2022년 1월 홍성의 65세 이상 인구는 10년 전에 비해 6310명이 늘어난 2만 4695명, 총인구는 9만 9267명으로 확인됐다. 홍성의 고령화율은 2012년 1월 20.9%에서 2022년 1월 24.9%로 4%p 증가했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 자료를 보면 올해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901만 8412명, 2023년 949만 9933명, 2024년 1000만 8326명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노인인구 1000만 시대를 앞두고 있다. 이렇듯 홍성을 비롯한 전국에서 해마다 노인인구가 늘어나자 노인일자리 문제가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 2018년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노인 일자리 80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오는 3월 9일 치러지는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집권여당의 대선후보로 출마하는 이재명 후보는 고령화·노인빈곤·노인일자리 분야와 관련해 “현재 80만 개인 노인 일자리를 임기 말까지 140만 개로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노인일자리사업 규모는 지난 2004년 2만 5000개에서 올해 84만 5000개로 확대됐고, 관련 예산은 2004년 약 200억 원에서 올해 약 1조 4000억 원으로 치솟은 상태다.

이런 가운데 홍성은 지난해 2288명을 모집했던 노인일자리사업 모집정원이 올해 2401명으로 113명이 증가한 상황이다. 전체 모집정원은 해마다 늘고 있지만 앞서 본지 4면에 보도된 B씨(75·홍북읍)의 사례처럼 근무기관의 모집인원이 축소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어 관련 민원 또한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이유는 생계비 마련 73.9%, 건강 유지 8.3%
부담되는 지출, 식비 46.6%, 주거비 22.3%
“사람이 그립다.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 좋다”


■ 노인일자리사업의 또 다른 얼굴, ‘탈락’
대전광역시 소재 중·고등학교에서 30여 년을 근무하고 퇴직한 박 아무개 여사(85)는 지난 2017년 노인일자리사업을 통해 거주지 인근 초등학교에서 등하굣길 안전지도 일자리를 구했다. 급여 수준은 월 30만 원 정도였지만 6년간 손수 돌봐온 손자와 떨어져  지내게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여서 손자 또래 아이들과 매일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됐다. 박 여사는 “아이들이 두 손을 모아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면서 “조잘거리는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좋았고, 등하교하는 학생들이 꼭 손자 손녀 같았다”고 말했다. 

노인일자리사업은 박 여사의 사례처럼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하지만 가끔은 노인들의 가슴을 멍들게 하기도 한다. 

홍성읍에 거주하는 김영숙 씨(가명·73)는 지난해까지 홍성읍의 한 중학교에서 출입자의 체온을 측정하는 업무를 맡아왔다. 김 씨는 관내 노인일자리사업 수탁기관 중 하나인 홍성군노인종합복지관을 통해 해당 일자리를 구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본인이 ‘탈락 대상자’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김 씨는 “지원자가 예전에 비해 많아졌고, 종합평가 결과, 점수가 다른 지원자에 비해 낮아 탈락 대상자가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크게 요동쳤다”면서 “예전에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많이 배운 사람에 속했고, 일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웬만한 일자리는 구할 수 있었는데 ‘탈락’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낯설었는지 정신적인 충격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라고 밝혔다. 

김 씨는 고심 끝에 노인종합복지관 측에 “생계유지를 위해 무슨 일이든 꼭 해야 한다”며 호소했고 결과적으로 홍성읍의 한 유치원에서 새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복지’와 ‘고용’ 맞물려 까다로운 부분 많아
거주지와의 ‘접근성’도 상당히 중요한 요소
“단순 노동 줄고 전문성 일자리 확대된다”


■ 생계유지 위해 고된 일이라도 해야
얼마 전부터 홍성읍의 한 유치원에서 청소를 하게 된 김영숙 씨(가명·73)는 사회초년생이던 1970년대에 공직에 입문해 10년 가까이 공무원으로 일했다. 이후 김 씨는 아나운서 채용 시험에 응시하기도 했지만 여느 사람들처럼 결혼을 하게 되면서 평범한 주부가 됐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엔 책을 읽거나 새로운 기술을 배워보려고 다양한 도전도 해봤다. 하지만 늘 집에만 머물고 있다는 답답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어느새 70대가 된 김 씨는 인생의 활력을 얻고자 홍성군노인종합복지관의 문을 두드렸다. 생계유지 비용을 마련해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도 있었다. 

김 씨는 “지난해까지 맡았던 체온측정 업무는 앉아 있는 시간이 길었고 움직임도 많지 않아 체력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요즘 새로 하고 있는 청소 업무는 체력적으로 많이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근무하는 유치원이 규모가 작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도 많고 담당하게 된 청소 구역도 넓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완전히 녹초가 된다”고 밝혔지만 “그래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김 씨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왕복 40분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 하고 있다. 생계를 위해 매주 온 힘을 쏟아 붇고 있는 김 씨는 주저하는 목소리로 “70대 노인에게는 정말 큰 액수인 월 7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김 씨의 목소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각박한 시대를 너무도 처연하게 대변하고 있었다.


■ 먹고살기 위한 무한 경쟁 시대의 도래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노인실태조사(2020)’, ‘노인의 현재 일을 하는 이유’ 항목의 연령별 응답 결과를 보면 65세 이상의 모든 연령대에서 생계비(생활비) 마련을 가장 많이 선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령대별 집단 중 85세 이상 집단에 속한 응답자들은 생계비(생활비) 마련 59.5%, 건강 유지 21.7%, 용돈 마련 10.1%를 선택해 생계비 마련을 선택한 비율이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낮았다. 전체 응답자 3712명의 소계는 생계비(생활비) 마련이 73.9%(1위), 건강 유지가 8.3%(2위), 용돈 마련이 7.9%(3위) 등이었다. 또한 동일 조사 내 ‘노인의 부담이 되는 지출’ 항목을 살펴본 결과 식비 46.6%(1위), 주거관련비 22.3%(2위), 보건의료비 10.9%(3위) 순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노인들이 먹고 사는 것에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있었고, 생계비 마련을 위해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이훈 홍성군 가정행복과 경로복지팀장은 “노인일자리사업은 복지와 고용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맞물려 있어 사업을 집행할 때 까다로운 부분들이 많이 존재한다”면서 “최근엔 전문성을 갖춘 노인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기 때문에 단순 노동의 성격에 가까운 노인일자리들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자리사업의 대상자들이 노인 분들이기 때문에 그래도 아직까지는 근무지와 거주지의 거리가 일자리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많은 노인일자리사업 수탁기관에서는 청소와 같은 단순 노동 일자리가 아닌 전문성을 요하는 새로운 노인일자리사업들이 대거 발굴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전문성을 가진 노인 일자리들이 곳곳에서 양산되고 있는 가운데, 은퇴한 노인들마저도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무한 경쟁의 시대가 소리 소문 없이 우리 곁에 당도했다. 무한한 경쟁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를 몰아넣고 있는 것은, 어쩌면 차가운 현실을 인정하고 순응해왔던 우리 각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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