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과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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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거짓말
  • 이상권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12.0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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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이스어 ‘데마고기(Demagogy)’는 아무런 근거 없는 거짓 선동(煽動)을 뜻하는 말이다. 이 단어의 존재 자체가 고대로부터 이미 거짓 선동정치가 있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약칭 ‘데마’라고도 하며, 많은 거짓 중에서도 이제는 “정치인의 거짓말”을 가리켜 이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꼭 거짓말쟁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정치인들에게 있어서 ‘데마’는 일상적인 일이다. 매우 흔한 예로서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국무위원에게 질의를 하면서 ‘…라고 국민들이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하지만, 그건 국민의 말이 아니라 국회의원 자신의 주장일 뿐인 경우가 99%이다. ‘내가 공약한 …를 드디어 해냈습니다’라고 자랑하지만, 그것도 대부분 정부나 지자체에서 해낸 일에 숟가락 하나 얹었을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심지어 숟가락 하나조차 안 올렸을 수도 있다. 

한편, 국회에서의 발언이 전국민에게 생중계되는 오늘날에는 정치인들이 이런 거짓말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날마다, 기회 있을 때마다, 하고 또 하면서 유권자를 속이는 기술을 열심히 발굴해내고 있다. 

수시로 ‘데마’를 생산해 유권자를 현혹시키고 지지를 끌어내는 방법으로 권력을 잡고, 그렇게 잡은 권력도 그런 방법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정치인을 ‘데마고그(demagogue)’라고 하는데, 노련한 데마고그들은 나치의 괴벨스처럼 달변(達辯)이라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래서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그들이 데마고그라는 사실을 눈치채기 쉽지 않다. 데마고그들이 정치를 하고자 하는 목적은 오로지 권력쟁취 또는 권력유지에 있을 뿐이고, 나라와 국민의 미래는 결코 관심사가 아니다. 물론 그들은 권력으로부터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명예와 돈을 결코 거부하지 않는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사상가 마키아벨리는 유명한 저서 《군주론》에서 “정치에 있어서는 목표의 달성만이 중요하며,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전통적 도덕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치인이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특정한 목적의 달성을 위해 외국과의 중요한 협약을 체결했다는 사실을 일정 시기까지 국민들에게 공개하지 않는다든가, 아예 협약을 체결할 의사조차 없다고 공표하는 등의 거짓말이다. 만약 그 목적 달성에 성공하면 그 거짓말은 한(漢)나라와 위(魏)나라 간의 전쟁에서 한신(韓信)이 행한 성동격서(聲東擊西:적의 동쪽 거점을 친다고 공표하고, 서쪽으로 몰래 침투해 위나라 왕을 사로잡음)처럼 역사에 남을 치적이 될 수도 있다.

사적인 이익, 즉 권력과 그에 부수되는 재물 또는 명예욕에 사로잡혀 있는 정치인이 언변까지 탁월하게 좋은 데마고그라면, 유권자들은 그의 데마에 속지 않기가 어렵다. 이들은 정치 경력이 쌓일수록 거짓말의 고수가 되지만, 그 결과 자신마저도 속여서 ‘자신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지난달 기자 출신인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심야에 3시간 동안이나 청담동에 있는 술집에서 변호사 30명과 술자리를 가졌다”는 ‘데마’를 발표하고, 망신을 당했다. ‘데마’였음이 밝혀진 후에도 그는 “앞으로도 국민을 대신해 묻고 따지는 국회의원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못하는 중증 데마고그라고 할 수 있다. 

역시 지난달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에서 자연스러운 봉사 장면을 찍은 것이 아니라, 최소 2~3개의 조명까지 설치해서 현장 스튜디오를 차려 놓고 콘셉트 사진을 찍었다”라는 ‘데마’를 발표했다. 이 데마를 접한 주한 캄보디아 대사관이 대통령 부인의 지원에 감사한다는 메시지를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국회의원의 의혹 제기에 고발로 대응하는 대통령실의 사상 초유의 행태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사람도 역시 중증 데마고그라고 할 수 있다. 

수년간 꼴찌에 머무르고 있는 프로야구단 ‘한화이글스’의 팬들은 ‘최강한화’라는 피켓을 들고 응원한다. 그런데 팬들의 응원을 먹고 사는 한화구단이 스스로 나서서 “우리는 ‘최강’이 아니니 ‘최강한화’라는 피켓은 사양한다”고 말할 수 는 없다. 팬들은 그 피켓을 들어 정말로 최강의 팀이 될 수 있도록 피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데마고그 정치인들에게는 거짓을 말하지 말라고 요구해도 아무런 효력이 없다. 한화이글스는 스스로 최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최강을 향해 노력할 수 있지만, 데마고그들은 스스로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 또는 정치집단의 말이 거짓이길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애써 진실을 외면하면서 무조건의 지지를 보내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데마에 관대하면, 데마고그들이 활개를 치게 되고,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는 점점 더 깊은 수렁 속으로 함몰되어 버릴 것이다. 악의적, 상습적으로 데마를 생산하고 유포하는 전문적 데마고그 정치인을 퇴치하는 책임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이상권 <변호사·전 국회의원·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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