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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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산
  • 변승기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1.1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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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졸업생이 학교를 방문했다. 고등학생 때와는 다르게 약간 모습이 변했지만,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아주 생기발랄하고 흔한 말로 속도 썩이고 거침없었던 아이였다. 

그런데 너무나도 차분해지고 제법 어른스러운 언행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현재는 서울에서 나름대로 전문가 훈련을 하고 있고, 바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제법 힘이 들어보였지만 잘 버틴다고 했다. 

맹자는 이런 말을 했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일을 주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흔들어 고통스럽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굶주리게 하여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나니, 그것은 타고난 작고 못난 성품을 인내로써 담금질하여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만하도록 그 기국과 역량을 키워주기 위함이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대문호의 말을 들을 때, 현재의 삶과 연결해 보면 저절로 성찰이 생길 때가 있다. 흔한 말로 학교에서 속을 썩이는 학생, 교칙을 준수하지 않는 학생, 등하교가 불규칙한 학생, 감정 조절을 못하고 다른 학생과 다툼이 있는 학생이 떠올랐다. 그렇게 힘든 10대를 보냈고, 주변인을 힘들게 했던 그 학생. 괴테의 말처럼 영혼이 잠시 아팠던 학생이었고, 복잡하고 힘든 세상의 삶을 살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과정을 한 학생이었다. 

필자가 만난 학생들은 극히 제한적이었고, 그 학생들과의 경험을 일반화하기도 무리가 있지만, 그 때 만났던 그 학생들은 지금 대부분 잘 살고 있다. 이제는 제법 사회에서 나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단지 그 때만 잠시 그랬을 뿐이다.

얼마 전 한 학생이 공연을 하며 실수했다고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필자는 그 ‘실수’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그래서 실수가 아니라, 프로가 되기 위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중이라고 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실제 현장에 나가서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고 누구나 다 성장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관점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은 전혀 다른 느낌을 갖는다. 솔직히 삶을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크고 작은 실수를 안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단, 그것을 어떤 관점으로 보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는 차이가 생길 수 있다.

흡연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 흡연은 중독성향이 있는 것이고 몇 년 동안 피웠다면 쉽게 금연하기 어렵다. 흡연하다가 적발된 학생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어른들은 담배를 피우면 몸에 해롭고, 학생 때부터 담배 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거의 똑같은 말을 듣는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내가 왜 담배를 피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사실 난 너무 괴로운 것이 많은데…. 그리고 어른들은 짧은 시간에 극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담배를 일주일만에 끊기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빨리 끊기를 바란다. 나도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면 끊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매일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반복되어,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지 괴롭다. 나의 이 괴로움을 말하고 싶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절규하는 학생의 한탄이지만 잘 되뇌어 보면 정말로 어른이 손을 내밀어 도와줘야 될 학생이다. 흡연으로 인해 똑같은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고, 쌓은 감정을 해소하지 못해 답답함이 극에 달한 학생이다. 어쩌면 본인이 가장 담배를 끊고 싶어할지 모른다.

청소년을 기르고 가르치는 보호자나 학교는 아주 비슷한 것이 공존한다. 무엇보다는 청소년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 아이를 다르게 보이게 한다. 추운 바다에 떠 있는 빙산을 상상해 보자. 물 위에 보이는 빙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물 속에 잠겨 있는 보이지 않는 빙산이 더 크다. 

내 눈앞에 보이는 그 아이의 말과 행동만으로 모든 것을 다 판단한다면, 보이지 않는 물속의 빙산처럼 내가 모르는 아이의 고민과 고통, 외로움은 알 수 없다. 오늘부터 길거리에서 만나는 학생을 사람이 아니라 빙산으로 보자. 새로운 것이 보일 것이다. 그게 진실이고 아이의 진짜 모습이다. 관점을 다르게 하여 아이와 친밀함을 형성하고, 그 친밀함을 기반으로 아이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분위기를 만들어보자.

변승기 <한국K-POP고등학교 교사·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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