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는 세계를 알고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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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세계를 알고 있는 사람
  • 변승기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3.16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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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지식과 경험이 누적된다. 지식과 경험이 통합돼 새로운 통찰이 생기고 그로 인해 자연현상, 대인관계, 타인을 이해하는 정도 등 주변의 모든 것을 인식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상담관련 공부를 시작했다. 기초를 쌓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하면 할수록 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주로 이론을 외우기 시작했고, 사례회의를 다니면서 암기를 많이 했다. 이상심리학에 더 관심이 생겼고, 각종 증상에 대한 특성이 흥미를 유발했다. 사람의 고유한 특성을 나타내는 심리검사는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애매모호함이 생겼다. 예를 들면 DSM-5(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분류체계와 진단기준에 나와 있는 각종 장애를 학습했지만, 과연 내가 경험하지 못한 장애를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것이다. 

필자는 불안에 대한 것은 말할 수 있었다. 불안에 대한 다양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나에게 없는 ADHD 증상을 갖고 있는 사람을 책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다. 

상담공부 초기에는 외운 것을 토대로 어떤 증상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책에 있는 그대로 말했다. 지금은 책에 나온 정의와 더불어 ‘내가 모르는 세계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추가로 말한다. 내가 모르니 당연히 공부를 더 할 수 밖에 없고, 모르는 것을 단편적인 지식으로 함부로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예의를 생각하게 된다. 

최근 미디어에 연예인과 관련돼 주로 등장하는 증상이 ‘선택장애’, ‘공황장애’, ‘우울증’ 등이다. 과연 우리는 올바르게 이런 증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알고 있는 사람은 직업에도 존재한다. 학교 공부나 일상생활의 직·간접적인 경험으로 모든 직업을 알 수 없다. 그래서 봉사활동이나 진로체험 등이 필요하다. 중학교에는 자유학기제, 자유학년제가 고등학교는 고교학점제를 통해서 진로선택과 경험의 폭을 확장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청소년이 자신이 모르는 세계에 있는 사람의 직업에 흥미를 갖게 된다면 알고 싶어지고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다. 모르는 것에 흥미를 갖고 그 흥미가 유지된다는 것은 청소년이 깊은 감명을 받았고, 자신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아무나 알 수 없는 ‘그것’을 자극했다는 뜻이다. 

보호자들은 자녀가 보호자의 관점에서 벗어난 시원찮은 일이나 공부를 하려고 하면, “그런 것 해서 먹고 살겠어?”라고 하며 자녀의 관심사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남긴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당연히 사랑하는 자녀가 더 좋고, 더 나은 직업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보호자나 똑같기 때문이다. 

만약 자녀가 얼토당토않은 것에 관심을 갖거나 하고 싶어 한다면, 우선 함께 그 직업을 탐색해 봐야 한다. 

한심하다는 듯이 비아냥거리기보다는 함께 찾다 보면 아이의 수준에서 발견하지 못한 것을 보호자가 알려줄 수 있고, 아이는 그것을 통해 수정할 기회를 갖게 된다. 진로방향을 강제로 수정하기보다 스스로 바꾸는 것이 효율적이고, 무엇보다도 아이는 보호자가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을 존중해 주는 것을 느끼면서 새로운 일이 생길 때마다 의논하려 할 것이다. 진로성숙도를 향상시키는 방법이다.

어떤 분야의 어떤 일도 깊이 있게 지속하면 전문가가 된다. 설령 그것이 현재의 기준이나 사회적 관심사가 아닐지라도 분명히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업인이 된다. 

내 눈앞에 있는 아이에게 자신이 모르는 세계를 알고 있는 사람과 만날 기회를 주면 책상에서 공부하는 아이를 만날 것이고, 미래엔 타인이 모르는 세계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

변승기 <한국K-POP고등학교 교사·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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