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와 재판에 있어서의 정치적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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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와 재판에 있어서의 정치적 고려
  • 이상권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10.05 08: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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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법의 잣대는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원칙에 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고, 이들 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면 법치주의가 무너지며, 법치주의가 무너지면 정의가 설 자리를 잃고,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한 국가는 필히 부정과 부패의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해 스스로 멸망하게 된다.

필자 스스로가 법조인이고, 한때나마 여의도 정치에도 몸을 담갔던 한 사람으로서, 권력을 쥔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얼마나 많은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또 다른 어떤 경우에는 얼마나 크나큰 실망을 안겨주고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본다.

정치와 사법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명확하게 분리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정치인에 대한 검찰의 수사나 법원의 판결에 정치적 고려가 뒤섞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례를 살펴보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필요했던 과정이었다는 주장이 우세하지만, 그 수사가 탄핵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고, 듣도 보도 못했던 최순실과 박 대통령의 경제공동체라는 논리까지 창출해내면서 매우 엄중한 중형이 선고됐다. 이러한 결과를 두고 과도한 정치적 고려가 개입된 결과라는 비판이 제기됐으며, 이로 인해 법조계는 물론 사회는 큰 혼란과 분열을 겪었다.

곽상도 전 국회의원은 아들을 앞세워 대장동 일당들로부터 50억 원을 받아 챙겼다는 혐의로 기소됐었다. 이 사건에서 곽상도 의원은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많은 사람은 그 결과를 두고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고 의심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대다수 국민은 곽상도 의원이 무죄라는 결과를 믿지 않고 있으며, 그만큼 일반 사회 구성원들에게 정치는 물론 법조에 대한 불신과 분열을 야기했다. 이 사건과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와의 관련성에 대한 의혹도 여전히 제기되고 있으며, 이는 정치적인 판결이 얼마나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시이다.

정진석 국회의원은 2017년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씨와 아들이 박연차 씨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부부싸움 끝에 권 씨는 가출하고, 그날 밤 혼자 남은 노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라고 적어 유족들로부터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검찰은 유족이 고소한 지 5년이 지나서야 정 의원을 벌금 500만 원에 약식기소했지만, 법원은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수사기관인 검찰이 고소사건 접수 후 5년 동안이나 기소여부의 결정을 미룬 것이나, 이에 대해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한 법원이나 모두 그 수사과정이나 재판의 결과에 있어서 정치적 고려가 없었다고 단언할 수 없다.

최근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있었다. 영장전담판사는 영장신청을 기각하면서 매우 이례적인 기각이유를 거론했다. “피의자 이재명이 정당의 현직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점 등을 감안할 때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노골적으로 정당의 대표라는 신분을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거나, 그러한 우려가 없다는 판단을 하는 근거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 사건 영장전담판사는 정치적 고려가 영장을 기각한 사유의 하나임을 스스로 명백하게 인정한 꼴이 됐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이재명 구속영장심사 결과 기각결정은 매우 불미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21대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몇 달 남지 않았다. 곧 22대 국회의원 후보에 대한 공천과 선거가 있을 것이다. 이중 최근에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최강욱 의원이 의원직을 박탈당하는 형을 선고받았지만, 10명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마지막 형의 선고를 받지 아니한 채 임기 만료를 앞두고 버젓하게 국회의원직을 수행하고 있다. 아마도 이들에 대한 법원의 정치적 고려가 없었다면, 이들 중 대부분은 이미 국회의원직을 상실하는 형의 선고를 받았을 사람들이다. 

정치인에 대한 수사와 재판에서의 정치적 고려는 절대 허용돼서는 안 된다. 또한 극성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국민 전체의 의사인 것처럼 왜곡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에 끌어들이는 정치판의 행태도 근절돼야 할 해악이다. 데마고그(demagogue)가 판치는 세상에서 그런 정치판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이상권 <변호사, 전 국회의원, 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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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f2416 2023-11-21 20:05:49
http://kin.naver.com/qna/detail.naver?d1id=6&dirId=60218&docId=403579229&page=1#answer5 자유민주주의 검찰공화국? http://kin.naver.com/qna/detail.naver?d1id=6&dirId=61303&docId=449411062&page=1#answer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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