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와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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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제와 균형
  • 윤장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5.07.17 07:42
  • 호수 900호 (2025년 07월 17일)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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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윤장렬</strong><br>베를린 자유대학교 언론학박사<br>칼럼·독자위원<br>
윤장렬
베를린 자유대학교 언론학박사
칼럼·독자위원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몽테스키외는 18세기 저서 ‘법의 정신’에서 “권력은 권력을 억제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주창한 권력 분립의 원리는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의 삼권분립과 견제·균형 제도의 기초가 됐다. 입법·행정·사법 권력을 나누고, 서로 견제하게 함으로써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는 구조다.

하지만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사청문회를 보면, 이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김민석 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장관 후보자들에게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수입보다 훨씬 많은 지출, 불투명한 자금 출처, 자녀의 해외 유학비, 논문 표절, 갑질, 겹치기 취업 등, 그야말로 ‘의혹 종합세트’다. 그러나 의혹만 무성할 뿐, 청문회는 자료 미제출과 무성의한 해명 속에 무기력하게 흘러가고 있다.

자료 제출률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핵심 의혹에 대해서는 “청문회에서 밝히겠다”는 말로 일관된다. 증인도, 참고인도 없이 ‘맹탕 청문회’가 반복되고, 거대 여당은 인준 강행을 예고한다. 여당은 방어하고 야당은 공세를 퍼붓는, 정당 간 대립의 구도만 재확인된다. 그 결과 청문회는 권력을 검증하는 자리가 아니라, 여야 간 정쟁의 무대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국민은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지 못한 채 인사청문회가 끝나버린다. 국회가 본연의 기능인 행정부 견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인사청문회는 단지 후보자의 도덕성만을 묻는 자리가 아니다. 공직 후보자에게 요구되는 기준은 형식적 요건이 아니라, 공적 신뢰의 최소 조건이다. 표절, 탈세, 병역 비리, 편법증여 같은 범법행위는 청문회에서 말로 소명할 문제가 아니다. 이는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 그리고 국민의 심판 앞에서 해명돼야 할 사안이다. 

이럴 때일수록 언론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언론은 흔히 ‘제4의 권력’이라 불린다. 정치권이 실패한 감시 기능을 보완하고, 권력의 사각지대를 비추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인사청문회가 열린 일주일간의 ‘슈퍼위크’는 언론이 열심히 받아쓰기만 하는 기간이 돼선 안 된다. 언론은 일주일로 제한된 청문회 일정 자체의 구조적 문제를 짚고, 그 한계를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보도는 여야 충돌 장면 중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언론은 의혹의 사실관계를 면밀히 검증하고, 자료 미제출과 부실 청문회 운영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보도해야 한다. 단순 보도에 그쳐선 안 된다. 인사청문회가 끝난 이후에도, 임명된 공직자가 실제로 자리에 걸맞은 자질과 도덕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추적해야 한다. 청문회에서 거론된 범법 의혹이 있다면, 검찰과 언론이 끝까지 추적해 책임을 묻고 심판해야 한다.

김민석 후보자는 여러 의혹에도 불구하고 총리에 임명됐다. 하지만 총리가 됐다고 해서 의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직자는 국민 앞에 떳떳해야 하고,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 인사청문회에서 한두 마디 해명했다고 해서 법적·도덕적 책임이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견제와 균형은 정치권만의 몫이 아니다. 언론 역시 이 원리를 보완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권력 간의 균형 속에서 작동한다. 지금처럼 입법부가 정략적이고, 언론마저 무관심하거나 무기력하다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인사청문회는 단지 형식적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국민이 권력자를 시험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다. 몽테스키외가 말한 “권력이 권력을 억제해야 한다”는 원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다. 그것이 제도로서 살아 숨쉬기 위해서는, 정치권과 언론 모두 자기 역할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국민을 이렇게까지 무시해도 되는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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