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불사 주지
칼럼·독자위원
인간은 모방의 천재들이다. 갓 태어난 아이는 부모와 집단의 행동을 따라하는 것이 곧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답답한 마스크를 아무런 저항 없이 얌전히 착용했다. 이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다.
1920년대 초 동인도의 한 동굴에서 늑대와 자란 여자아이 두 명이 발견됐다. 그들은 늑대처럼 먹이를 먹고 네발로 걷는 등 늑대인간이 돼 있었다. 구조 후 두 발로 걷고 말하는 법 등을 배웠지만 밤이면 늑대처럼 울부짖는 행동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행동은 지능과 DNA의 문제가 아니라 어린 시절에 각인된 행동이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에 힘을 실어줬다.
여기에 대해 1931년 미국의 심리학자 윈스럽 나일즈 켈로그(Winthrop Niles Kellogg)는 부인을 설득했고, 부부는 자신의 자녀를 투입해 구체적인 실험을 강행했다. 그들은 10개월 된 아들 ‘도널드’와 7개월짜리 침팬지 ‘구아’를 9개월 동안 같은 조건 같은 방식으로 쌍둥이처럼 함께 키우며 관찰기록 ‘유원인과 어린이(An Ape For a Kid Sister)’을 남겼다. 실험결과는 침팬지가 인간의 아이보다 감정교감은 물론 여러 면에서 앞섰고 더 나은 행동을 했다.
문제는 인간인 도널드가 침팬지 ‘구아’를 모방한다는 것이었다. 도널드는 구아가 하는 놀이를 따라 했고 먹이를 달라고 내는 소리를 완벽히 흉내 냈다. 그리고 또래 아이들이 평균 50여 개의 단어를 사용하며, 문장을 구사하기 시작했지만, 도널드는 겨우 세 개의 단어밖에 표현하지 못했다. 이 실험은 여기서 중단됐다. 실험자들이 정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침팬지가 인간처럼 자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침팬지처럼 자랐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이후 엄마에게로 돌아간 구아는 적응에 실패해 이듬해 죽었고, 도널드는 놀랍도록 회복돼 유능한 의사가 됐지만 부모 사망 후 극심한 우울증을 원인으로 42세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도널드의 우울증과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 엄격한 아버지의 교육 때문이라는 주장과 침팬지와의 실험 때문이라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자식(인간)을 동물과 함께하는 실험에 직접 투입했다는 아버지의 행동철학은 도널드의 선택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같은 실험은 반복할 수 없다는 특수성 때문에 교차검증의 보편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러나 늑대인간과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는 점에서 인간은 뛰어난 모방학습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대해 불교 유식학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8식인 아뢰야식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에서부터 태어나서 배우고 경험한 모든 것을 저장하고, 7식은 8식만을 오직 주인으로 삼는다. 그래서 감각기관(안, 이, 비, 설, 신)인 전 5식으로부터 들어오는 새로운 정보를 판단하는 6식은 7식이 8식 안에서 찾아 제공하는 과거 경험을 토대로 분석한다. 이 같은 인간의 마음 구조(심리)는 각기 다른 업을 형성하며 다음 생까지 이어지게 된다. 집단에서 이어지는 전통과 문화도 이와 같은 현상이다.
요즘 학생들에게 글을 읽고 이해하는 문해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교과서에 서술되는 단어의 의미를 가르치느라 정상적 수업진행이 어렵다고 호소한다. 실험에서 같은 내용을 글자로 읽고 이해했을 때가 영상으로 보는 것보다 더 정확하고, 다양한 상상력을 일으킨다는 결과를 얻었다. 다시 말하면 아이들이 일상에서 독서와 다양한 대화(언어)에 참여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핵가족과 언어학습 단계를 무시하는 통념적 사회 일반의 교육형태가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예전에는 보통 3대가 한집에 살거나 이웃으로 함께하며 공동육아 형태를 취했다. 이때 어린아이는 부모와 조부모들을 선생으로 언어를 익힘으로 세대 간 폭넓은 대화가 가능했다. 이에 비해 현재 유아들의 양육은 엄마가 도맡았고,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외부교육기관에 맡겨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이가 말을 배우며 소통의 정서가 함양되는 “엄마 모야”하는 시기가 사라져 버렸다. 아이는 성장과정에서 하루에도 수백 번 귀찮을 정도로 “엄마 모야”라 물으며 새로운 것을 익히고 궁금증을 해소하며 사유의 폭을 넓힌다. 이것은 수만 년을 이어온 인간의 생존방식이다. 그런데 첨단교육의 어리석음이 인간의 발달과정을 외면했고, 부모는 생존에 매달리느라 ‘말 배움의 단계’를 놓침으로써 오늘의 참담한 현실을 부추긴다.
말과 글은 가장 뛰어난 소통방식으로서 인간이라는 종이 모든 경쟁자들을 제치고 지구의 주인이 된 결정적 도구이다. 앞서 침팬지와의 실험에서 보았듯이 모방의 천재들인 인간이 인간을 모방하는 기회를 잃는다는 것은 인류 미래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