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개산(寶蓋山)에서
상태바
보개산(寶蓋山)에서
  • 구재기 시인
  • 승인 2014.05.15 14: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재기 시인과 함께하는 시로 찾는 ‘너른 고을 홍성’ <45>

 


보물은 말하지 않는다
스스로 뽐내지도 않는다
감투* 앞에서도, 보살* 앞에서도
곰보* 앞에서도, 사랑 앞에서도
결코 자신을 보물이라 말하지 않는다

보물은 천년을 산다
거북이와 같은 목숨으로
말처럼 내닫더라도
가진 빛을 퇴색하지 않고
시들지도 아니한 꽃으로 피어난다

귀인의 목에 걸려 있거나
도둑의 서랍 속에 누워 있더라도
좀처럼 기쁨이 넘치지 않게
얼어있어도 녹지 않는, 보물은
차라리 태양을 희롱하는 꽃

보개산 곳곳에는
보물들이 숨겨져 있다
세상의 흔하지 않은 보물들을
아무도 모른다, 수천의 무게로
덮여있는 보물이 안 보이는 까닭을

한반도 13정맥의 하나인 금북정맥은 남으로 솟구쳐 청양 백월산에서 북서진하여 가야산을 빚고 서산의 은봉산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돌려 태안반도의 끄트머리 안흥진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260km에 이르는 긴 산줄기이다. 이 금북정맥에서 짐짓 곁으로 비껴나 남쪽으로 뻗어 솟아올라 보개산을 이는데, 홍성군 구항면에 소재한다. 현재에는 21번 국도가 지나는 꽃조개고개(한용운 동상이 있는 곳)에서 남산으로 올라 일월산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을 따라 보개산을 경유하여 거북이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금북정맥 답사자들에게 안내되고 있다.

보개산은 불과 274m에 이르는 산이지만 옛날부터 많은 보물이 숨겨져 있는 산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과연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혹자들은 9가지 보물이, 혹은 7가지 보물이 숨어 있다고도 하고, 13개에 이르는 전설을 품고 있다고도 말한다. 그러고 보면 잔돌마저도 거의 보이지 않다가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곳곳에 문득 솟아올라 다소곳이 앉아있는 갖가지 모양의 거대한 바위들이 나름대로의 전설을 안고 있어 보개산을 찾은 이들에게 자못 관심과 함께 즐거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꽃조개 고개에서 거북마을이 이르기까지 보개산을 경유하는 길은 행정안전부로부터 전국명품 숲길로 선정된 영예의 길이기도 하다. 보개산 하면 떠오를 수밖에 없는 마을은 무엇보다도 ‘거북이마을’이다. 전국최고의 안성 교육마을 중 당당하게 이 ‘거북이마을’이 1위를 차지하였지 아니한가? 이곳에서는 무려 500년이라는 서월 속에서 마을을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를 만난다. 그리고 보개산에 오르면서 9개의 보물인 보살바위, 말바위, 자라바위, 범바위, 할매바위, 산제바위, 호랑이굴바위, 삼형제바위, 곰보바위, 사랑바위 등 기기묘묘한 바위들도 만난다.

그 옛날 보개산에 산불이 났다. 보통 산불은 아래에서 위로 번져나가기 마련인데, 이 날은 위에서 산불이 나서 아래로 번져갔다. 무서운 속도로 아래로 번지는 산불이 갑자기 감투봉 아래 어느 초가집[草堂]뒤에서 멈추었다. 바로 그때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 1629.인조 7~ 1711. 숙종 37)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시호가 문충(文忠)인 약천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당시 서인의 중심인물이었으며, 문장과 서화에도 뛰어났다. 널리 알려져 있는 시조 “동창이 밝었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 소치는 아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 재 너머 사래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냐(《약천집藥泉集》에 수록된 시조 작품)의 지은이이기도 하다.

또한 거북이 마을에는 담양 전씨 삼형제인 야은, 뇌은, 경은을 모신 ‘구산사(龜山寺’라는 충영각이 자리잡고 있음도 반가운 만남이 된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충신들이 섬이나 외지에 숨어들어 두문불출(杜門不出)하였는데, 이 구산사에 모셔진 야은 또한 ‘두문동(杜門洞) 72현(賢)’에 속한다. 거북이마을 전체를 휘돌아 보개산 정상에 오르는 이야말로 최고의 명품등산을 한 셈이 된다. <칼럼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