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하나가 되어-천주교 홍주순교성지를 둘러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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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하나가 되어-천주교 홍주순교성지를 둘러보며
  • 구재기 시인
  • 승인 2014.07.18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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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기 시인과 함께하는 시로 찾는 ‘너른 고을 홍성’ <54>

하늘로부터의 목소리가
땅의 울림으로 바로 서기까지
두드려 얻은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네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도
백발의 빛나는 면류관을 쓰고
어둠을 지키는 일에 나서고 있네

홍성천의 물과
월계천의 물은 언제나 하나가 되어
말씀으로 흐르고 있는 이 자리
212명이 피어올린 순교의 꽃이
송이송이 영원한 생명 안에 들고 있네

견실한 열매를 위한
순정한 자양과 진리로
새벽을 고하는 종소리가 울리나니
지혜를 제쳐두고 어찌 진주를 캐겠는가
숨은 일도 이제는 온유한 반석의 빛

발의 등불이요 길의 횃불로
내 나라 내 고장이 가는 발걸음
좁은 문으로 걸어가리니
두 물이 하나로 흘러내리듯
현양*하는 땅을 갈아 거멀못이 되었네
*현양顯揚: 이름이나 지위 따위를 세상에 높이 드러냄

 


순조실록을 보면 정언 이의채가 “홍주는 사학(邪學)에 가장 심하게 물든 지역이다”라고 상소를 올릴 정도로 바다와 인접하여 외부 문물 수용의 창구 역할을 했던 홍주는 천주교를 받아들이는 시기와 전파속도가 매우 빨랐다. 그래서 순교자가 많이 발생하여 ‘신앙의 못자리’라는 별칭을 얻었다. 기록상으로 212명의 순교자가 있고, 알려지지 않은 분까지 거의 700여명이 순교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순교자가 많은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의 특징은 예비신자들의 모범 성지이며, 박해 처음부터 끝까지 순교자가 나왔을 뿐만 아니라 한국순교사의 거점 성지라할 수 있다. 

천주교에 입교하여 3년간 예비신자로서 수계를 지키며 30여 가구를 입교시킨 원시장 베드로는 신해박해 때 옥에서 세례를 받고 홍주의 최초의 순교자로 순교하였다. 홍주 배울 출신으로 장장 22년간이라는 예비 신자 생활을 하며 거의 10년 넘게 옥살이를 하다가 순교하기 직전 자기 스스로에게 세례를 주고 하느님을 영접한 예비신자들의 모범이었던 이여삼 바올로는 1812년 12월경 순교하였다.홍주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가 발생한 시기는 1866~1870년까지 5년간 지속된 병인박해 때로 교회의 순교록인 <치명일기>, <병인치명사적>,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등과 관변측 기록인 <공충도사학죄인성책> 등이 그 당시의 순교자 현황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홍주성지에서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친 순교터 3곳으로는 교수형 100명, 목사 13명 등 113명이 순교한 최대의 순교지인 홍주옥, 홍주성 밖 월계천과 홍성천이 만나는 합수머리 근처의 생매장터, 홍주성 북문 밖 월계천과 소향천이 만나는 북문교 아래 100m지점에 위치한 참수터 등이다. 또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한 장소로는 옛 경사당인 지금의 한국통신 자리로 순교자들이 문초와 형벌을 당하던 홍주진영의 동헌, 옛 근민당이었던 홍주목사의 동헌, 그리고 순교자들이 주리틀림을 당하던 장소로 지금의 예비군 중대터인 성내의 저자거리 등 3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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