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붓을 처음 들었던 것은 국민학교 4학년. 학교 서예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배웠던 서예로 대학에서 전공까지 하게 됐다. 서예를 전공으로 공부를 하다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되면서 글씨와는 무관한 사회복지사로 동료상담가로, 사회복지와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전혀 다른 직업을 전전하다가 20년 만에 서예가로 캘리그라퍼로 직업을 갖게 된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렸을 적 꿈인 선생님이 됐 아이들에게 글씨를 가르치고 있으니 어렸을 적 꿈을 이룬 것이나 진배없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글씨는 어쩌면 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붓을 들고 아이들을 만난다. 휠체어를 타는 선생님을 대하는게 조금은 어색한 마음이 들법도 한데 더 공손히 미소를 보인다. 학교주차장에 도착하면 먼저와 기다리고 서로 휠체어를 내려주겠다 한다. 본인이 일이 생겨 도와주지 못할 땐 다른 친구에게 부탁을 해놓는다. “00아 우리 선생님 잘 부탁해~ 휠체어 조심히 내려드리고 짐도 들어 드려야해. 턱은 조심해서 밀어드리고!!” 이런 예쁜 말로 감동을 준다.
요즘, 아무리 청소년이 무섭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명백히 우리나라 중학교 아이들 이야기다. 나 역시 덩달아 더 고운 마음이 생긴다. 표정까지 부드럽게 변한다. 사실 그런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뵈면 역시나 다르다. 처음 뵙는 중학교 선생님들의 따뜻한 배려와 유머는 내 긴장을 풀게 하고 지난날의 상처까지도 치유를 주는 듯하다.
아주 고차원적인 매너다. 어김없이 그렇다. 얼마 전부터는 ‘학교 밖에서 꿈 찾는 아이들’(학교 밖 아이들이란 말을 내 느낌으로 바꿔보았다)과 수업을 진행하게 됐다. 정원은 열인데 어떨땐 둘, 셋 모인다. 담당선생님이 집까지 픽업을 해주는데도 불구하고 그렇단다. 그래 어쩌면 학교 밖에서 꿈을 찾기 위해 학교 안에서 꿈을 찾는 아이들 보다 더 바빠 그런지도 모르지.
엄마 아빠일도 도와주는 아이도 있고(실제로 그렇다), 먼길 서울에 올라가 노래 레슨도 받아야하고 그러니… 한번은 부드러운 느낌의 글자를 표현해보는 강의시간에 “사랑해라는 글씨를 느낌대로 써보자”하니 몇 아이들이 쓰기 싫단다.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해본적도 없어서… 그래! 사실 나도 해본 적도 들어본 적 많이 없어. 난 아직도 그런 말에 닭살이 돋아.하하. 그리고는 글씨쓰기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솔직한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 바로 소통과 공감.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문화에 젖어 있는 아이들에게 이 시간만큼은 깊어지는 시간을 주고 싶다.
나는 요즘 왜 이리 자주 화가 나는지,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한번쯤 돌아보고 슬퍼해야 할때 실컷 울어도 보아야 하지 않나! 내 옆에 있는 친구도 한번쯤은 돌아 보고, 엄마 아빠이기전에 한 인간인 우리의 엄마 아빠도 다시 한번 보아주고. 한창때라고 했던 스물두살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되면서 내게 인생은 왜 이리 가혹한 것인가? 했던 경험들이 이제는 내게 가장 큰 무기가 된다. 내가 가졌던 경험들. 슬프고, 괴롭고 고통스럽기까지 했던, 혹은 기뻤던, 행복했던 경험들도 함께 나눈다. 그러면서 서로 마음을 연다. 캘리그라피선생님이라기 보다는 나이가 조금 더 들은 친구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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