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를 쓴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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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를 쓴다는 것은
  • 이은희<장애인창의문화예술연대 대표
  • 승인 2016.08.18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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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라퍼로 활동하다 보면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싶은데, 악필이거든요. 그래도 배우면 잘 쓸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감성의 글씨이니 잘 쓰고 못쓰고는 문제가 아니라고 먼저 답을 해드리고 무엇이든 일 년을 해봐야 답이 나오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드려본다. 캘리그라피를 배우고도 못쓰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시도조차 못하시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인다.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붓을 쥐어주고 기본 획 연습후, 체본을 써주고 임서를 시키면 같은 글씨를 보고 쓰는데도 각각 다른 느낌의 글씨가 나온다. 선이 삐뚤고, 일그러져 있는 동그라미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선생님이 써준 글씨를 보고 얼마나 열심히 집중하며 따라 썼는지. 빠알갛게 달아 오른 얼굴을 들고 그 글씨를 바라보고 있는 내게 반짝거리는 그 눈망울을 볼 때란!

그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렇듯 글씨는 정성이다. 한 획에 얼마나 많은 감성이 스며드는지 써놓은 선을 보고 있노라면 그 감성이 전해진다. 그래서 또한 캘리그라피는 감성의 글씨다.

작품전시를 하다보면 전시된 작품 앞에서 발길을 뗄 수 없었다는 말씀들을 종종 하신다. 어떤 작품 앞에서는 폭풍 같은 바람이 일기도 하고, 어떤 작품 앞에서는 깊은 슬픔이 베어 나오는가하면, 작품을 보고 새로운 용기를 얻기도 하고 눈물이 고이기도 한단다. 사실 글씨 쓰는 작업은 정적인 듯 하지만 붓사위가 춤을 출 때도 있고 때로는 활달하고 격렬하다.

캘리그라피는 선 하나에 감성을 혹은 감정을 담아내는 작업이다. 그러한 매력에 요즘 많은 분들이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필자는 강의 시 글씨를 잘 쓰는 스킬보다는 감성과 감정을 이끌어 내는 작업을 우선한다. 우린 감정을 표현하는데 너무 인색하다. 적절한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조차 감정을 감추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질 때가 있었지만…

대면하여 마음을 말로 전하지 못할 땐 글씨로 전해보자. 어렸을 적 아버지가 친구 분과 주고받았던 편지를 언니와 몰래 읽으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있다. 두 분이 주고받던 편지를 몰래 읽으면서 어렵기만 했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 순화되었으니 글로 전해지는 감정은 얼마나 위대한가. 작품전시 준비로 받았던 압박을 뒤로 하고 쓰고 싶은 글자를 쓴다. 화선지에 먹빛이 번지며 고요해지는 순간이 얼마나 황홀한지.

최근 글씨 쓰는 일이 직업이 되고 개인적인 작업과 강의를 병행하다 보니, 어느 순간 글씨는 내게 일거리가 돼 버렸다. 첫마음을 다시 들여다 본다.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는 말이 있다. 글씨엔 그 사람이 담겨 있다는 말이다. 글씨를 똑같이 베껴 잘 쓰는 것에 모든 의미를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감성과 스토리를 꺼내어 잘 담아낼 것인지, 어떤 감정을 전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바쁘게만 달려왔던 길 위에 잠시 멈춰 서서 사색할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좋아하는 시인의 글귀 중 하나를 오늘의 선물로 전하고 싶다 “자기마음을 돌보는 것보다 더 바쁘고 우선 할 일은 세상에 없어라”-박노해 글 중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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