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새’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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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새’를 찾아서
  • 조남민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6.10.1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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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으을인 가아아아요.’ 한(恨)의 가수 고복수(1911~1972)가 부른 ‘짝사랑’이라는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구슬픈 멜로디와 처연한 음색으로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이 곡은 스산한 가을날이면 어김없이 들을 수 있는데, 육영수 여사를 잃은 지 일년 뒤에 맞은 장모의 팔순잔치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애절한 목소리로 불러 좌중을 숙연하게 만든 바로 그 노래이기도 하다.

이 곡에 등장하는 으악새는 억새의 방언(사투리)이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새의 종류로 봐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으악 으악’ 또는 ‘왁 왁’하며 우는 왜가리를 으악새나 웍새로 부르는 지역(북한)이 있다는 것과, 이 노래의 2절은 ‘아아, 뜸북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라고 시작되기에 으악새는 뜸북새와 대비되는 새의 종류일 것이라는 주장이 ‘왜가리설’의 실체다. 이에 반해 국어사전에는 짤막하게나마 ‘억새의 방언(경기)’이라고 나와 있으니 으악새는 억새가 분명하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공신력을 얻어 현재는 널리 퍼져있는 상태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으악새에 대해, 1930년대에 만들어진 사전에 그렇게 나와 있으므로 현재까지 그냥 쓰는 것이라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참으로 뜨악한 이 ‘으악새’는 셀 수 없이 많은 가요의 노랫말 중에 오직 이 곡에만 존재하는데, 이 노래의 작사가인 박영호(1911~1952)는 뒷동산에서 들리던 새의 울음소리를 가사에 담았다고 하니, 그의 고향이 함경북도 원산인 점을 고려하면 으악새는 조류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긴, 장쾌하게 펼쳐진 우리의 오서산 정상에 흐드러지게 하늘거리는 억새를 보고 ‘이야, 으악새 정말 멋있게 피었네’ 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한편, 으악새를 억새로 여기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억새’를 ‘갈대’로 잘못 아는 사람들도 꽤 있다. 억새와 갈대는 모두 같은 시기에 피어나지만 억새는 1m 내외로 자라며 주로 산에서 볼 수 있고, 갈대는 대개 물가에서 자라며 3m 내외로 키가 큰 것이 특징이다. ‘억새’는 왠지 억셀 것 같지만 이름과 다르게 낭창낭창 하늘거리는 부드러운 여성을 떠올리게 하는 반면, 갈대는 어쩐지 스산하고 서걱대어 수염이 덥수룩한 남성을 연상케 한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억새와 갈대를 혼동하여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중에는 ‘여자의 마음은 흔들리는 새털과 같네’라는 노래가사가 있는데, 이 노래를 최초로 번역한 김영환(1893~1978)은 새털보다는 갈대가 어감상 낫겠다고 판단하여 ‘여자의 마음은 흔들리는 갈대’라고 바꾸었고, 이후 이 가삿말은 급속도로 유행하게 되어,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여자의 마음은 갈대랍니다’ (장윤정의 ‘어머나’ 중)라는 노래에 까지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러나 어쩌랴, 억새는 여성스럽고 갈대는 남성스러운 걸...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박일남-‘갈대의 순정’)은 가장 정확하게 쓰인 경우다. 볕 좋은 이 가을날, 웍새든 왜가리든, 갈대든 억새든지 간에 으악새를 닮은 그 무엇을 찾아 황금빛 들판길을 한번 걸어보자.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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