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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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지혜
  • 정규준<한국수필문학진흥회이사·주민기자>
  • 승인 2016.12.2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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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부모를 산중에 버려 죽게 하는 고려장이 시행되던 때에, 노모를 짊어지고 산 속으로 들어가던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등 뒤에서 노모가 계속 나뭇가지를 꺾어놓고 있어 그 연유를 물었다. “아, 집으로 돌아갈 때 이 표식을 따라가면 길을 잃지 않을 것이란다.” 가슴이 먹먹해진 아들은 고려장을 포기하고 노모를 모시고 돌아와 골방에 숨겨둔 채 효를 다하며 살았다.

북방 오랑캐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오랑캐의 수장은 문제를 하나 내어서 맞추지 못하면 속국으로 삼겠다고 하였다. 모양새가 똑같은 말 두 필을 놓고 어미와 새끼를 구별해내라는 것이었다. 아무도 답을 맞추지 못하여 전국에 방이 붙었다. 소식을 들은 노모가 아들을 불러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라 하였다. 현장에 도착한 아들은 말을 사흘간 굶긴 후 먹이가 담긴 말구유를 가져오도록 했다. 그러자 한 마리는 먹이를 정신없이 먹어댔고, 또 한 마리는 말구유를 자꾸만 상대 쪽으로 밀어주는 것이었다. “본래 어미는 목숨을 버리면서 자식을 구하고, 자식은 죽어가는 어미의 뼈 속 영양분까지 빼어먹으며 살아남는 게 정한 이치입니다. 먹이를 마구 먹어대는 것이 새끼 말이요, 먹이를 밀어주는 것이 어미 말입니다.” 오랑캐의 수장은 이렇게 지혜로운 백성이 사는 나라를 속국으로 삼을 수 없다며 예를 갖추고 돌아갔다. 임금은 노모의 지혜가 나라를 구했다며 큰 상을 내리고, 백성이 노인을 공경하고 효를 다하며  살도록 고려장을 폐지하였다.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을 통째로 불태우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이는 살아온 삶의 경륜과 깨달은 가치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거라 할 수 있다. 육아를 노인들이 전담한 인디언의 삶이나 삼사 대가 같이 산 우리의 대가족제도는 지혜와 경륜을 중시하는 바람직한 사회상의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노인이 되었다고 해서 다 지혜로운 것만은 아닌 것이 요즈음 세태 같다. IMF보다 심각하다는 경제 불황 속에서 젊은이들은 취업, 연애, 결혼, 출산, 주택을 포기한 데 이어 삶의 희망까지도 포기한 'N포시대'에 살고 있건만, 정치세력화한 기득권층은 정년연장과 노후대책 만을 외치며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보수적인 실업대책은 오히려 청년들을 비정규직이나 알바생으로 전락시켰다. 최근, 대통령의 탄핵 결정을 주도한 촛불시위에 젊은 층이 대거 참여한 것은, 삶의 자리를 잃은 그들의 분노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 아닐까.

지혜(智慧)는 이치를 깨닫고 사물을 치우침 없이 처리하는 능력으로써,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고 균형적인 삶을 살게 하는 기능을 지닌다. 죽어가면서도 자식의 살 길을 예비하고 새끼에게 먹이를 양보하는 모성의 마음은, 보은과 상생의 미덕을 이끌어내어 한순간에 세대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는 걸출함을 보여준다.

노인들이여, 우리는 고도성장 아래 풍족한 일자리와 근면 알뜰함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살아왔다. 이제 자리를 젊은이들에게 내어줌으로써 그들의 왕성한 생명력이 우리의 노후를 보장하는 순환의 법칙 위에 몸을 맡겨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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