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분위기 있게 썰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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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분위기 있게 썰어보시죠?”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7.12.11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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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신설상가-라이브 레스토랑 쎄시봉
견과류가 들어간 비법소스를 얹은 돈가스는 두툼함을 더해 씹는 맛을 살렸다.

대학교 입학식, 아버지와 함께 들어간 음식점은 태어나 처음 가보는 경양식 집이었다. 가정 시간에 배웠던 테이블 매너를 떠올리며 어색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최대한 우아한 모습으로 돈가스를 썰어 한 입 먹어보았다. 어색하기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슬쩍 눈치를 보다 아버지 접시를 들어 고기를 먹기 좋게 썰어 다시 앞에 놓았다. 그제야 포크로 고기를 한 점 찍어 드신다. 경양식 집 안에는 희미하게 노래가 흘러나왔다. 마음과 마음의 ‘그대 먼 곳에’라는 노래다. ‘먼 곳에 있지 않아요. 내 곁에 가까이 있어요~’ 그렇다. 난생 처음으로 고기가 내 가까이 있다. 돈가스가 뭔지도 모르고 사주는 것이니 소스 하나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다.

이제는 분식집에서도 흔하게 돈가스를 먹을 수 있다. 어느 분식집을 가도 똑같은 소스를 뿌린 돈가스와 양배추, 통조림파인애플이 나오는 평범한 돈가스. 그러나 이제까지 먹었던 돈가스는 모두 잊기 바란다. 지난 달 27일 문을 연 라이브 레스토랑 ‘쎄시봉’에서는 주인장이 직접 만든 크림 스프와 수제 돈가스, 함박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다. 더구나 주인장의 감미로운 음악 선율을 덤으로 즐길 수 있다.

 

쎄시봉을 들어가는 입구 계단에는 재즈 액자들이 분위기 있게 걸려 있고, 실내로 들어서면 따듯한 벽돌이 포근함을 선사한다. 오후 2시가 되면 창으로 축복처럼 쏟아지는 햇볕을 받으며 빈티지한 소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쎄시봉만의 매력이다. 다시 시선을 돌리면 기타와 신디사이저, 마이크가 있는 무대가 눈에 들어온다. 쎄시봉을 운영하는 김세윤, 황자윤 부부의 음악무대다.

“오랫동안 큰 레스토랑을 운영했는데 이제는 좀 아담하고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어서 열게 되었어요.”

손님이 오면 들어가 음식을 만들고, 다음 손님이 없으면 손님이 식사를 하는 동안 무대에 올라 연주와 노래를 한다. 손님이 가고 나면 다시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를 하며 다음 손님을 맞는다. 이곳에서의 식사시간은 천천히 흘러간다.

“제가 음식 하는 것을 아주 좋아해요. 저희 집 모든 음식은 제 손을 거쳐서 나오죠.”

쎄시봉의 돈가스는 일단 고기 비주얼이 남다르다. 얇게 펴진 돈가스가 아니라 통고기를 바삭하게 튀기고 직접 만든 소스를 얹어 먹는다. 소스에는 견과류가 들어가 씹는 식감을 더했다. 전채로 나오는 크림스프는 생크림을 넣어 한층 고소함을 살렸다. 곁들여 나오는 오이피클과 깍두기는 자칫 느끼할 수 있는 돈가스를 개운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쎄시봉 문을 열 때면 황자윤 대표가 직접 손으로 짠 아크릴수세미를 개업 선물로 건네준다.

오늘 혹시 결혼기념일인가? 아님 애인과의 백일 기념이나 생일? 아무 날이 아니어도 된다. 후다닥 게눈 감추듯 먹을 것이 아니라면 고소한 크림스프에 바삭하게 구운 식빵 한 조각을 흠뻑 적셔 먹고, 본 음식으로 나오는 돈가스나 함박스테이크를 여유 있고 우아하게 썰어보자. 곁들여 와인 한 잔 마시면 당신도 오늘만큼은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메뉴: 돈가스 8000원, 함박스테이크 1만2000원, 크림 리조또 9000원, 새우튀김우동 7000원
문의: 634-2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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