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와 바뀌어야 할 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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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와 바뀌어야 할 밤문화
  • 허성수 기자
  • 승인 2018.03.20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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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종교적인 이유로 술과 담배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배우고 훈련을 받았기에 철칙처럼 지키려고 노력해왔다. 그렇다고 술 담배를 하는 사람을 배척하거나 함께 어울려야 할 자리를 기피하지는 않는다. 술자리에 가더라도 잔이 앞에 오면 정중하게 소신을 밝히고 거절하는 방법으로 입에 대지 않는 것이다.

20대 때 당시 사회 분위기가 그랬던 것 같은데 술을 권하는데 거절하면 무례한 행위로 간주돼 참 난처한 적도 많았다. 억지로 강요하는 술을 거절하면서 욕을 많이 얻어먹기도 했고, 왕따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다. 술꾼들은 주도(酒道)가 그렇다고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자신들 위주로 정해놓고 마시지 못하는 사람을 핍박하며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식이니 이것은 올바른 예의범절이 아니었다. 술을 마시지 못 하는 사람을 배려할 수 있도록 상생관계의 예절이 전제돼야 올바른 주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성숙한 사회로 발전하면서 술자리 분위기도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술을 거절하는 사람의 입장을 존중해 주고 사이다나 콜라 등의 음료수를 권하는 분위기로 변화하면서 금주가들도 술자리 참석이 한층 편해졌다.

그런데 평소 점잖은 사람이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취하게 되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줘 민망할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이성이 같이 있는 자리에서 성적인 농담을 마구 하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진한 스킨십도 함부로 한다. 한결같이 맹물만 마시면서 멀쩡한 정신으로 있다가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필자로서는 너무 낯설고 민망해 슬그머니 일어나 도망가곤 했다. 그래도 술독에 빠진 사람들은 1차가 아쉬워 2차로 노래방에 가고, 또 3차까지도 가서 마음껏 회포를 푼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많은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래도 한때는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 문화처럼 당연하게 여겨져 여성들이 어떤 피해를 입어도 그냥 묵과하고 지나쳐 왔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이 당한 수치스런 일을 함부로 발설하며 고발할 수도 없었다.

같은 직장에서 가해자인 남성이 우월한 위치에 있으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어 그냥 참고 견디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런데 올해 미국에서 상륙한 미투(me too, 나도 피해자다)운동이 보수적인 한국사회를 확 바꿔놓았다. 용기있는 여성들이 과거에 당했던 성폭행 피해사실을 고백하기 시작하면서 잘 나가던 인사들이 하루아침에 추풍낙엽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그 동안 존경받았던 사회 지도층 인사들 가운데 과거 저질렀던 야만적인 행위가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정치가, 검사, 영화배우, 연극인, 시인, 교수, 성직자 등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유명인사들이 연약한 여성을 상대로 성적 편력을 일삼으며 갑질을 했다니 분노를 참을 수 없다. 피해 여성들로서는 평생 씻기 어려운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하니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가해한 남성들은 대부분 술 때문에 큰일을 저질렀을 것이 틀림없다.

술은 적당하게 마시면 좋은데 절제하기가 쉽지 않다. 계속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주거니 받거니 마시다 보면 취하게 되고 마약처럼 작용해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인간을 둔갑시키며 짐승과 같은 광기를 발휘하게 한다. 요즘 미투에 걸려들까봐 회식문화가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직장에서 회식해도 1차로 끝내고 2차는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하니 바람직하게 여겨진다. 술은 마시더라도 이성을 잃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게 마시고 일찍 집에 돌아가서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갖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노래방 업자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지만 다른 건전한 업종으로 전환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밤문화가 가정 중심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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