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아를 키우던 부부의 마음 아픈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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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아를 키우던 부부의 마음 아픈 사연
  • 이철이 청로회 대표
  • 승인 2018.06.21 15:5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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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삼촌의 쉼터이야기

어느 날 중년의 부인이 쉼터로 전화를 해왔다. 전화 목소리에는 온통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했다. 사연인즉 중학교 2학년 딸아이가 가출을 했단다.

“우리 딸은 그동안 집과 학교 밖에 모르던 착한 아이였습니다. 2학년 1학기가 되면서부터 집에 귀가하는 시간이 늦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집에 들어오지 않고 가출이 잦아졌습니다.” 이번에도 가출했는데 하루나 이틀 정도 지나면 집에 들어올 줄 알았단다. 밤늦게까지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아서 친구들에게 수소문해 보았단다. 그러다가 딸의 친구로부터 21살 오빠와 함께 가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부는 생업을 전폐하고 일주일 내내 여기저기 딸을 찾아 나섰지만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학생이 말하기를 “홍성에 사는 철이 삼촌을 찾아가서 도움을 받아보세요.”라는 말을 하면서 내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사연이 너무 딱했다. 어떻게 하던지 딸을 꼭 찾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 지금 시간이 있으신가요?” 하고 물었더니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럼 지금 청로쉼터로 오십시오.”

한참 후에 중년의 부부가 물어물어 쉼터로 찾아왔다. 쉼터에서 나를 만나자마자 “제 딸이 가출한지가 일주일이 되었어요. 제발 좀 찾아주세요.”라며 애원했다. 딸을 찾을 수 있는 단서를 물었더니 “일주일 전에 21살 오빠의 오토바이를 타고 갔다”는 정보가 전부였다. 나는 홍성과 광천으로 수소문했다. 수소문 결과 대천에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즉시 대천에 연락이 닿는 20살 또래 아이들을 수소문했다. “내가 지금 대천으로 갈 테니까 만나서 얘기 좀 하자.”

부모님과 대천으로 달려갔다. 전화를 받은 아이들이 벌써 모여 있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상황을 얘기하고 빨리 찾아보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이 흩어지고 한 시간 정도 시간이 흘렀다.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게 부릉거리며 들려왔다. 남학생 한 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데 뒷좌석에 여학생이 타고 있었다. 그동안 부모님이 애타게 찾아다니던 딸아이였다. “학생 고마워!”

여학생을 찾아서 데리고 온 남학생이 정말로 고마웠다. 남학생의 등을 토닥거려주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부모님은 남학생에게 허리를 구부리며 몇 번씩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우리는 2학년 여학생을 찾아서 부모님에게 인계하고 돌아왔다.가출한 여중생의 부모님이 며칠 후에 쉼터로 찾아왔다.

“저희 아이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집에서는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님이 눈물을 글썽이며 딸 문제를 상의하러 온 것이다. 딸이 가출한 일주일 동안에 전혀 다른 아이처럼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음주와 흡연과 외박이 습관처럼 반복된다고 했다. 이 날 부모님과 딸에 관해 상담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듣고 깜짝 놀랐다. 부부는 결혼 전에 우연한 기회로 미혼모시설에 봉사활동을 갔었다고 한다. 미혼모시설에서 유난히 예쁘고 귀여운 두 살 된 여자아기를 보고 마음이 끌렸다는 것이다. 

부부는 아기가 예뻐서 여러 번 찾아다니며 함께 놀아주곤 했단다. 그러다가 고심 끝에 아기를 입양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결혼한 후에 아기를 집으로 데려왔지만 양쪽 집안의 반대가 극심해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고 한다. 그래도 아기를 잘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남들 못지않게 사랑과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부부는 혹시 친자식이 태어나면 아기에 대한 사랑이 식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들은 아이를 낳지 않고 입양한 딸만 애지중지 키웠다는 것이다.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셨네요.” 나는 진심으로 부부의 희생에 존경심이 생겼다. 부모의 진심을 모르고 속을 썩이는 딸아이가 안타깝기만 했다. 혹시 중학교 2학년 예민한 시기에 자신의 입양사실을 알게 되지나 않을까?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비뚤어진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부부와 상의해 딸을 쉼터에 입소시키기로 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쉼터에서 1년 동안 함께 생활했다. 딸은 의외로 쉼터 생활을 모범적으로 잘했다. 고등학교 진학할 무렵 쉼터를 퇴소하고 다시 부모님에게로 돌아갔다. 딸은 집으로 돌아간 후에 생활이 또다시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그 때마다 전화로 하소연하며 울먹울먹했다. 딸을 입양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말도 했다. 나는 그 때마다 마땅한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다. 혼자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사랑하는 따님이잖아요. 너무 실망하지 마시고 기다려보십시오. 언젠가 마음을 잡고 부모님에게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따님이 마음을 잡고 부모님의 착한 딸로 되돌아가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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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금 2022-08-25 01:09:46
저도 남편에 불임으로 인해 딸을 입양했습니다. 윗글을 읽으니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중학교때부터 집나가기를 반복한딸이 중 2병이라고 이또한 지나가면 괜찮아지겠지 한 세월이 6년이나 흘렀네요. 이혼가정이라서 더 힘든가보다 원하는대로 다해줬어요. 고등학교 입학식도 안가고 자퇴하더니 엄마랑 사는게 싫타고 짐싸가지고 나가서 공원에서 자고 밤세고 들어오더니 화가너므 나서 아빠한테 가라고 했더니 가더라구요. 그집에서 1년살더니 새엄마 아들이 옷벗고 자는대 문열고 들어와서 만졌다고 원룸 얻어달라고 해서 아빠가 얻어주었고 지금 까지 자고 먹고 밤세게임하고 배달음식 시켜서먹고 쓰레기더미 만들면 또 치워달라고 한지가 6년입니다. 바뀌지않고 엄마가 싫은이유도 모르겠다하면서 돈달라 집치워 달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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