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 창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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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는 창가에서
  • 최복내<숲속의힐링센터 숲 해설가>
  • 승인 2018.08.2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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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가 지났으니 가을이라 해야 맞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에 의한 기후변화의 탓 일게다. 7월부터 40도를 오르내리던 더위도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그 기세가 한풀 꺾이는 것 같다. 보기 나름일지는 모르겠으나 길가는 행인이 내몰아쉬는 숨소리도 한결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고 나무그늘에 앉아서 할딱거리는 개의 혓바닥 길이도 얼마간 짧아진 듯하니 말이다. 해수욕장 역시 젊은이들에게 적합한 놀이터로서의 면목을 보여줄 뿐이지 나같이 이미 정년퇴직의 쓴잔을 거부 할 수 없는 누루꾸루미 한 황혼인데야 어쩌랴. 게다가 어린아이들이라도 있다면 억지춘향으로 끌려 다녀야 할 때도 혹시 생기겠는데 그것마저 없어진 마당에 해수욕 합네 하고 어정거리며 나갈 턱이 없어졌다.

물에 들어가서는 그저 철벙거리면서 그 많은 군상들의 흥청거림 속에 쌓여서 눈요기라도 한다는 친구들도 없는 것은 아니나 눈요기는커녕 보고 싶지 않는 것이 더 많으니 오히려 눈을 감고 싶을 판인데야 숫제 눈에 독을 치러 가는 것과 다름없겠거늘, 한증막 같은 차에 시달리면서 ‘남이 간다니까 똥 장구 지고 장 간다’는 격으로 덩달아 나가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만, 세속이야 자유의 물결을 따라서 선진국의 문턱을 넘보게돼 경제사정이 제법 윤택해진 덕택에 바캉슨지 무언지 안 가면 벌이라도 받을까 싶어 열심히 레저를 즐기는 생활로 변해가고 있다. 산에서 바다로 젊음을 빙자하며 발산하게끔 된 우리의 풍속도가 이제는 어설픈 경지를 지나 제법 틀에 박혀 가는 듯도 하다. 손을 마주잡고 거리를 싸다니는 풍경이 눈에 거슬린다던 얘기는 이제 옛날로 돌아가고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 여인은 남자의 허리에 한 팔을 돌려 휘감은 교착된 상태로 걸어가면서 주고받는 밀어에 스스로를 취한 폼이 결코 외화의 한 장면이 아닌 바로 우리의 것이 됐다.

아무튼 2018년의 여름도 이제 여운을 남긴채 떠나려 한다. 창가에 기대앉아 물끄러미 밖을 쳐다보려니 전선에 앉은 제비 때가 인상적이고 길 잃은 쌀 매미 한 놈이 길옆 플라타너스 나무 위에서 맴 맴 맴- 청아하게 가을이 다가옴을 읊조리고 있다. 어차피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틀림없이 오는 것, 이제 가을이 저 만치서 노크를 하고 다가서니 멀어졌던 일 년이 그리워서도 이제 우리는 반가이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나. 아침저녁으로 찾아드는 서늘한 미풍이 가을의 서장인양 살갗에 시원해지면 풀어 해친 옷깃을 다시 얌전히 여미어야겠다.

내 흥겨울 파티에 소요되는 모든 것이야 어줍잖은 인간의 잔 솜씨를 부리기보다는 오시는 손님이 만반 갖추어 오는 대로 받아들이기만 하기에도 감당못하게 풍성할 것이다. 수정 알 같이 청정한 가을 물 못지않게 마음부터 맑게 씻고 명랑한 달빛에 견줄 마음의 거울을 말끔히 닦아 그동안 흐려졌던 티끌일랑 대청소를 해버릴 영단을 내릴 것이다. 유리창 밖의 오가는 표정들은 많은 사람들의 말을 빌어 어렵다는 체감경기 때문인지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얻어맞은 것만치나 어리둥절 하는 것 같다. 그러나 환경에 순응할 줄 알고 양같이 어진 속성들을 지녔기에 멀지 않아서 곧 되돌아서게 되리라 믿으니 걱정할 것 없다.

한 겹 창안에 도사리고 앉아있는 나도 세상 잡소리가 자꾸 귀에 거슬려 신경을 건드리긴 하나 가을 신부를 맞기 위해 안간힘이라도 써야 할 채비를 마련 중이라, 되고 안 되고야 미리 촌탁할게 아닌 성싶어 세월의 너그러운 유동성에 그저 맡겨 둘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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