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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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발자국
  • 전만성(화가, 갈산고등학교 교사)
  • 승인 2009.08.2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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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전만성의 길따라 마음따라]
▲ 페츄니아(수채화 30X26)


"저~기 하나님 발자국 있다~" 

"하나님 발자국??"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 발자국이라고 할까? 하나님이 아무 곳에나 나타나나? 아무튼 천둥같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뭔가 어마어마한 것을 상상하며 찬이 뒤를 졸랑졸랑 따라갔다. 

찬이는 열 살 적 내 친구다. 엉뚱하고 허풍이 심했지만 착하고 순했다. 찬이의 허풍이 외로움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남들 다 다니는 초등학교도 1학년까지만 다니다 말았고, 엄마가 돌아가셔서 아버지하고만 살았다. 아버지가 보통 때는 얌전하고 말이 없었지만 술을 드셨을 때는 동네가 떠나가게 큰소리를 치고 찬이에게 성질을 부려 찬이가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찬이의 거짓말은 엉뚱해서 누가 들어도 거짓말임이 표시가 났다. 남을 속여서 이득을 보자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색할 때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을 때 자주 먼저 말을 꺼내곤 했다. 그래서 찬이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찬이가 지어내는 말들은 눈처럼 쌓였지만 곧 무시되었다. 

"뻥치지 마! 또 뻥친다." 그런 찬이와 유일하게 친한 사람이 나였다. 

찬이와 함께 도착한 곳은 성벽 맨 끝 돌계단 아래였다. 남산공원에서 남문 밖으로 나오는 길모퉁이 돌바탕. 그 좁고 음침하고 아슬아슬한 길을 지나 찬이와 나는 읍내에 나다니곤 했다. 그 받침돌 한 귀퉁이를 찬이가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뭔가 거창한 것을 기대했던 나는 설마 하여 물었다. 

"이걸 하나님 발자국이라고 한 거니?"
"응! 저 위에서 뛰어내리다 걸려서 찍힌 거다. 힘세지?"
 
찬이가 손가락을 펴 성벽 꼭대기를 가르켰다. 담쟁이넝쿨 옷을 입은 성벽 꼭대기가 아스라이 멀었다. 그리고는 오목 패인 부분을 손바닥으로 살살 쓸고 발뒤꿈치를 대 보였다. 어이가 없었다. 하나님은커녕 어린아이 발자국도 안되는 작은 홈에 불과한 것을 하나님 발자국이라니! 

"너도 한번 해봐." 찬이가 나에게도 권했다. 나는 신발을 벗고 발뒤꿈치를 그곳에 걸쳐보았다. 들어갈 리 없었다. 

"이게 어떻게 하나님 발자국이 되니?"
"힘이 엄청 세잖아!" 

찬이의 얼굴은 여전히 진지했다. "도무지 말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 발자국이라고 하는 찬이가 모자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순간 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에게는 굉장한 힘이 있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뒤로도 나는 그 길을 지나갈 때면 그곳에 발뒤꿈치를 대 보곤 했다. 아무리 대 보아도 하나님 발자국일 수가 없는 크기였다. 하나님은 아무리 힘이 세어도 갓난아기는 아닐 것이며 내 상상으로는 몸집이 우람한 아저씨일 거였다. 그런데 요걸 가지고? 

"하기는! 홈 표면이 사람 피부처럼 매끈매끈하기는 했었지."
끝도 없는 이야기를 꾸며내고 그걸 진짜처럼 말하고 믿었던 찬이와 그 시절, 그 풍경들이 그리운 것은 가고 없는 옛날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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