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봉산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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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산에 가다
  • 전만성(화가, 갈산고 교사)
  • 승인 2009.11.1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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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전만성의 길따라 마음따라]
▲ 고민한다고 해결되지는 않아. 전만성. 옹기토와 화장토 소성. 높이 25㎝


이번에는 용봉초등학교 쪽에서 올라가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늘 수련원을 지나서 용봉산에 오르곤 했다. 그래야만 용봉산에 가는 줄 알았고 그 길에서 만나는 이미지들로 용봉산을 그리고 있었다. 습관이라는 게 그랬다. 오며가며 용봉초등학교 앞마당에서 관광버스며 등산객들을 보면서도 그 길이 산에 오르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용봉초등학교 앞 공터에는 이미 등산객을 싣고 온 버스들로 만원이었다. 버스들은 새벽부터 달려 왔을 것이다. 등산로 초입에 맨드라미와 감나무, 그리고 색색의 백일홍이 말간 햇빛에 목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탐식하듯 스케치북에 옮겼다. 어차피 오늘 하루는 나에게 선물한 시간, 손이 가는 대로 다 그려보자는 생각을 했다. '할 일을 젖혀두고 왜 산에 가려고 하는가?'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내 오감과 온 몸으로 가을을 느끼고 싶었다. 이 계절에 흠뻑 젖어보지 않고는 마음이 건조할 것 같았다.
 
"이쪽으로 가면 미륵불이 나오나요?" 젊은 남녀 한 쌍이 위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미륵불? 이쪽에도 돌 불상이 있었던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젊은이들이 지나가 버렸다. 젊은 남녀가 지나가고 나서야 마당가의 너럭바위며 바위불상이 희미하게 떠오르며 언젠가 와 봤던 기억이 났다. 채 1년도 안 된 일이 전생의 일만큼이나 현실감 없이 불투명했다. 

미륵암에서 부터는 혼자 걸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암자까지만 오는지 아니면 산에 오를 시간이 지나서인지 암자에 닿기 전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암자를 지나고 부터는 조용해져 최고봉에 오를 때 까지 혼자서 맘껏 산을 누렸다. 봉우리 정상에서는 한참 동안 햇볕과 놀았다. 햇볕이 봄볕처럼 따사로우며 여렸고 닿는 것마다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최고봉에서 용봉초등학교 쪽으로 되돌아 내려갈까, 잠시 망설였다. 자동차를 그 족에 받쳐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애석불을 한 번 더 보고 내려가기로 했다. 여러 번을 보았어도 초등학교 때 소풍 와서 본 기억만큼 또렷하질 않아 이번에는 오래 앉아 천천히 뜯어볼 생각이었다. 

악귀봉에서 한 떼의 왁자한 등산객들을 만났다. 그들은 '향우산악회'라는 명찰을 하나씩 달고 있었는데 '향우'라는 글자가 어쩐지 외로움을 느끼게 했다. 외롭기 때문에 뭉쳐서 술도 마시고 산행도 하고, 그리고 믿을 것이다. 우리는 더 가까워져 가고 있다고. 그들 중 몇 명이 바위 꼭대기에 기어오르며 탄성을 질렀다. 오메! 오메! 이 산 죽여주네요. 잉? 

용봉사에는 벌써 인적이 끊겨 있었다. 뗑그렁! 뗑그렁! 풍경소리가 스산했다. 약수를 한 모금 떠 마셨다. 한기가 느껴졌다. 산속에는 이미 어둠이 내려오고 바람이 휘돌았다. 주차장까지도 한참을 걸어야 하니 어서 내려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일주문을 지나 매표소에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산이 어둠에 그윽하게 잠겨가고 있었다. 수많은 생명을 품고 이제는 쉬려 하고 있었다. '잘 쉬어라! 산아! 다시 오마!' 작별을 고하고 거기서부터 차가 있는 곳까지 걷기로 했다. 

걸어서 오는 길은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잠시 나그네가 되어 세상의 모든 짐을 다 내려놓고 세월없이 걸었다. 노래를 부르다가 꽃을 보다가 하면서 맘껏 호사를 부렸다. 오늘 하루는 정말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고픔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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