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으로 전락한 구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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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륵'으로 전락한 구의회
  • 정세인(디트뉴스24편집위원)
  • 승인 2010.09.1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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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회 폐지 논의를 위한 선결과제

기초의원은 물론 기초단체장까지 정당공천제 없애야

위(魏)나라 조조(曹操)와 촉(蜀)나라 유비(劉備)가 한중 땅을 놓고 싸울 때다. 조조는 진격이냐 후퇴냐를 놓고 진퇴양난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날 밤, 하후돈이 조조에게 암호를 물었다. 조조는 그날 저녁 메뉴로 나온 닭갈비를 보며 "먹을 것은 없으나 그래도 맛은 있어 버리기는 아깝다"고 푸념 비슷하게 한 것을 염두에 둔 듯 무심코 내뱉은 말이 '계륵(鷄肋)'이다.

하후돈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 돌아와 막료들과 의논을 하는데 아무도 이해를 못하는 가운데 단지 주부(主簿)로 있는 양수(楊修)만이 조조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내일은 철수명령이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하며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의 해석은 조조가 '계륵'이라고 말 한 것으로 보아 결국 한중 땅은 버리기는 아깝지만 대단한 땅은 아니라는 뜻이니 버리고 돌아갈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본 것이다. 이 말은 적중하여 다음날 철수 명령이 내려진다.

후한서(後漢書) 양수전(楊修傳)에 나오는 내용이다. 다음날 아침 철군명령을 내리려는데 군사들이 이미 철군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놀란 조조가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양수의 행동을 괘씸하게 여겨 앞서 그의 목숨을 빼앗고 철군을 단행했다는 후일담도 전한다. 고사에서 알 수 있듯이 '계륵'이란 무엇을 취해 보아도 이렇다 할 이익은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심하는 진퇴양난의 마음을 대변하는 말이 돼 버렸다.

요즘 특별시를 비롯한 광역시의 구의회 존폐를 놓고 협상을 벌이는 여야 정치권의 모습이 바로 계륵같이 취하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것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의회를 폐지하기로 했다가 생각해 보니 아깝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존치시키기로 선회하는 등 갈팡질팡 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폐지하자니 선거 때 운동원으로서의 역할이 아깝고, 존치하자니 구정의 효율성에 문제가 적지 않다는 여론이 무섭다는 생각에 눈치만 보고 있는 꼴이 한심하게 보인다.

구의회 부작용 인정하면서도 폐지하자니 아까운 정치권

여야는 지난 2월 국회 행정체제개편특위를 열어 서울특별시와 6대 광역시의 구의회를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특별시와 광역시의 소속 자치구의 통합을 촉진하는 차원에서 현재의 자치구를 준자치구로 변경해 구청장은 현행과 같이 민선으로 선출하되 구의회를 폐지하고 그 기능을 광역의회 의원 등으로 구성된 구정위원회가 대신 맡는다는 내용이다. 현재의 구의회가 지역 유지들의 친목모임으로 전락해 실질적인 자치를 가로막는 등 낭비적인 요소가 많다는 게 주이유였다.

국회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각계각층이 찬반양론으로 엇갈려 논란을 빚어왔다. 구의회 폐지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대도시의 경우 사실상 동일 생활권으로 자치구를 구분해 운영할 정도로 고유사무가 많지 않은 만큼 광역행정체제로 흡수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일부 구의원들의 감투싸움과 해외연수, 그리고 각종 부정부패 연루 문제로 인해 지방자치의 근본 취지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개선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구의회 폐지를 반대하는 측은 한마디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처사라고 반발해왔다. 지방자치제도가 아직도 정착되지 않은 가운데 몇 가지 부작용만을 내세워 구의회를 폐지하려는 것은 지방자치 정신에 위배됨은 물론 일방독주하고 있는 단체장을 견제할 장치가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더구나 자치구는 존치시키면서 구의회만 폐지하는 것은 지방자치의 양대 축 가운데 하나를 없애는 것으로 절름발이 자치로 인한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지적한다.

양측 모두 일면 타당성이 있는 주장으로 보여진다. 일반 시군과는 달리 대도시의 경우 동일 행정권으로 독특한 행정을 펼칠 사안이 적은 게 사실이고 구의회가 그동안 제 역할을 해왔는지 반문해 볼 필요는 있다. 그렇다고 지방자치 정신을 거스르면서 졸속으로 구의회 폐지만이 능사인 것처럼 추진하는 것도 옳지 않다. 개선점을 찾기 보다는 빈대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식의 처사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광역 행정 효율성에 문제 많아' '지방자치 정신 훼손이 더 문제'

구의회 폐지의 찬반 논란에 앞서 더 큰 문제는 국회의원들의 이기적인 발상이다. 그동안 여야가 지방자치와 관련한 법개정을 하면서 과연 지방자치의 발전을 생각하며 협상을 벌여왔는지 묻고 싶다. 날이 갈수록 정당개입을 강화했고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는 지방단체장의 행동을 제약하는 입법만 일삼아 오는 등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신경써왔다.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영향력 하에 지방자치를 올가매어 놓고 자기 선거에 도움을 받을 것이가에만 염두에 두고 협상을 벌여왔다고 해도 무리한 말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여야가 이 문제만큼 죽이 맞아 돌아갔던 것도 없을 것이다.

이번 구의회 폐지문제만 보더라도 여야가 합의를 해놓고도 곰곰이 이해관계를 따져보니 아니다 싶어 슬그머니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식으로 얼버무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구의회가 폐지되면 1천여 명의 구의원 자리가 사라지고 구의원 공천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내 사람 챙기기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차기 총선에서 현역의 프리미엄이라고 할 수 있는 구의원들 중심의 지역 선거 책임자를 잃는 것도 계산에 포함됐을 것이다. 여야 의원들이 행정의 비효율 제거라는 대의를 팽개치고 밥그릇에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이같은 중앙정치개입으로부터의 독립이 이뤄져야 한다. 정당의 개입으로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어 있는 현재의 제도를 과감하게 털어버려야 제대로 된 지방자치가 구현될 수 있다는 얘기다. 우선 정당의 지방선거에서의 후보 공천권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공천권을 갖고 지방자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중앙정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주민자치가 이뤄질 수 있다.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인 국회의원 인식부터 바꿔야

적어도 기초자치에서 만큼은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 광역자치는 중앙정치권과의 협조사안들이 적지 않은 만큼 정당공천제가 불가피하다고 해도 동네살림을 꾸려나가는데 정당개입은 아무 효용가치가 없다. 구의원은 물론 시군의원, 그리고 시군구 자치단체장까지도 정당공천제를 폐지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충성을 맹세한 선거운동원들이 대거 주민대표로 진출해 우리의 자치 수준을 낮추고 각종 부작용을 발생시켰다는 사실은 지방자치 발전에 대해 객관적이고 양심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구의회를 없애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 지방자치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우선 정당공천을 없애고 난 다음 구의회를 운영해 보고 그래도 문제가 있다면 그 때 논의해도 늦지 않다. 중앙정치로 부터의 독립이 앞서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처럼 구의회를 '계륵'처럼 인식하는 국회의원들이 있는 한 우리의 지방자치는 요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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