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 속 빛난'일본사회의 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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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규환 속 빛난'일본사회의 저력'
  • 김선미 디트뉴스 편집위원
  • 승인 2011.03.18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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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처음에는 컴퓨터 그래픽 화면인 줄 알았다. 거대한 빌딩에 비행기가 돌진해 건물이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은 현실에서는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9.11 테러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로부터 10년. 거대한 검은 해일이 바람보다 빠른 속도로 도로와 마을을 무자비하게 덮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충격적인 광경에 망연자실, 할 말을 잃는다. 어떻게 저런 일이 현실일 수 있는 것인지.

쫀쫀하다고 일본 우습게 알지만 그게 일본사회의 저력
지난 11일 일본 동북부 지역인 도호쿠 6개 현을 강타한 진도 9.0의 대지진은 지구 자전축과 일본 열도의 위치까지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자연의 재앙 앞에 인간의 무력감과 그 참혹함을 어떻게 말로 형언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원폭 피해의 기억이 생생한 터에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해 핵공포까지 엄습하고 있으니 아비규환이 따로 없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이할 정도로 시민들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일본 대지진 재해보도를 하는 많은 세계 언론들이 한편으로는 일본 시민들의 '놀라운' 시민의식에 경이로움을 표하고 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 앞에서 공포감과 비탄에 사로잡혀 울고불고, 비명을 지르고, 무질서로 혼돈에 빠지는 익숙한 모습 대신 침착함과 배려를 앞세운 일본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전 세계에 전해지고 있다. 국내 언론도 사람 수보다 훨씬 적은 우동을 놓고 서로 '먼저 드시라'고 권하고, 주먹밥 한 덩어리에 감사하고, "내가 울면 더 큰 피해자에게 폐가 된다"며 터져 나오는 울음마저 소리죽여 삼키고, 인터뷰에서도 울부짖음과 고성 대신 나직하게 피해상황을 설명하고 구호를 요청하는 모습을 전했다. 워낙 지진의 여파가 심한 탓에 일부 편의점과 마트의 진열대가 텅텅 비기는 했으나 약탈도 새치기도 없었다고 한다.

세계가 대지진 참상에 경악하고 성숙한 시민의식에 찬사
위기상황에서도 돋보이는 이러한 침착함과 배려심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되는 일관된 재해대책 교육과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일본사회 윤리관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흔히 "전 세계적으로 아마 우리나라 국민들만큼 일본을 우습게 아는 나라가 없다"고들 이야기하곤 한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식민지를 겪어야 했던 쓰라린 역사적 기억, 자신들의 잘못을 끝내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일본 사회와 일본의 위정자들의 억지스러운 모습, 우리도 국력을 키워 하루빨리 일본을 능가하고 싶다는 소망 등등…

우리가 그들을 무시하든 어쨌든 엄청난 재앙 앞에서도 무서울 정도로 유지하는 냉정함과 배려를 앞세운 성숙한 시민의식은 사실 많이 부럽다. 한편에서는 거침없이 분출하는 우리의 항의와 분노의 표현방식에 대해 다이내믹함에 비유하며 일본의 이 같은 침착함을 길들여진 소극적 태도로 폄하하기도 한다. 쫀쫀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죽음의 공포가 코앞에 닥친 위기 속에서도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인간이 갖는 덕목 중 가장 아름다운 덕목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는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인간이 좋은 쪽으로 진화하고 있는 증거라고까지 평가하기도 했지만 고속성장을 해오는 동안 우리사회가 잃은 미덕 중 하나가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아닌가 싶다.

우리사회가 잃어가고 있는 미덕인 침착함과 배려심 보여줘
작은 예로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주차문제를 보자. 운전자라면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사이드브레이크는 채워놓은 채 정상적으로 주차해 놓은 차를 막아놓고도 미안한 줄조차 모르는 사람 때문에 열받아본 적이 한두 번 쯤은 있을 것이다. 남의 집 대문이나 영업장소 출입문을 막아놓고도 오히려 큰 소리다. 남에 대한 배려는커녕 폐를 끼치고도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아주 사소한 예이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혀보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가리지 않는 몰염치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특히 위정자를 비롯한 사회지도층으로 갈수록 국민에 대한 배려나 염치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 짧은 기간에 총리가 몇 번씩이나 바뀌는 등 집권여당을 비롯해 일본의 정치지도자와 정치권은 지리멸렬했다. 그러나 우리가 '우습게' 보는 일본의 저력은 이 같은 일본 정치의 후진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성숙하고 근면한 일본 국민의 힘에서 나오는 것 같다. 기본을 지키는 힘 말이다. 아마 이런 국민이 있는 한 지금의 엄청난 재앙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정말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약 우리에게 이런 일이 닥쳤다면 우리사회는 어떤 모습을 보여 주었을까? 물론 우리국민도 잘 대처했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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