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8일 홍북면 중계리에 고암 이응로 생가 기념관 개관
개관전, 비공개 유작 포함 100여점 선 보여
개관전, 비공개 유작 포함 100여점 선 보여

프랑스에서도 월산과 용봉산으로 기억되는 고향 홍성을 그렸다는 이응로 화백.
용봉산이 시원스레 펼쳐진 들녘에 기념관이 포근히 들어섰다.

국내보다 세계가 먼저 인정한 홍성이 낳은 화가, 고암 이응로. 한국화의 독창적인 재해석, 문자 추상, 서예적 추상으로 대변되는 고암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 다음달 8일 개관을 앞두고 있다.
홍성군 내에 이렇다 할 미술관이 현재까지 없던 상태에서 문을 여는 이응로 기념관의 설립 의미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홍성군의 목표대로라면 이응로 기념관은 생가복원과 더불어 고암의 업적을 기리고 나아가 홍성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태어나게 된다.
이응로 기념관 및 생가 복원 총 면적은 2만2000㎡로 온전히 기념관이 들어서는 부지 면적은 1312㎡이다. 기념관은 상설전시공간과 기획전시공간, 수장고, 북 카페, 사무실로 구성되며, 기획전시공간은 다목적으로 이용이 가능하며, 어린이미술관 등의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기념관 외 부지는 이응로 생가, 연꽃 연못, 야외 미술체험학습장, 산책로 등으로 조성됐다.
홍북면 중계리에 마련된 기념관은 그간 홍성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생경한 외관과 특별한 공간으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아왔다. 건축가는 조성룡(69·성균관대 건축학과 석좌교수·도시건축) 씨다. 조 씨는 건축계에서 ‘풍경의 건축가’로 불린다. 의재미술관(2001)·선유도공원(2002) 등 있는 그대로의 지형을 살리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기념관에도 이 같은 철학을 담았다. 고암이 살았을 당시에 바라보았을 풍경과 길을 다시 살려놓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관람객들이 용봉산을 바라보고 일월산을 산책하며 고암이 사랑한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의도이다. 전시실에 가능하면 인공조명을 쓰지 않으면서 벽에 반사돼 여과된 빛이 들어오도록 창을 배치하고, 외벽에 붙인 나무도 매끈하게 다듬어진 면보다는 거친 면을 노출시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변색되도록 연출했다.
조 씨는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응로 기념관에 대해 “건물과 들판, 기념관 앞에 조성한 연밭은 별개가 아니다. 이 모두가 하나의 풍경이다. 건물만이 기념관이 아니라 산과 들판, 길 등이 모두 어우러진 풍경 전체가 기념관”이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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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이응노미술관과의 차별화가 관건
이응로 기념관의 건립과 생가 복원에 대한 논의의 시작은 2004년도 부터였다. 6여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개관을 하는 만큼 이응로 기념관이 홍성군에 시사하는 바는 남다르다.
그동안 군은 이응노 화백의 미망인인 박인경 여사와 수 차례 만나 기념관의 전시 방향에 대해 논의해 왔다. 또한 화백의 손자인 이종진 씨와 양해각서를 체결하여 유족이 소유한 이 화백의 작품의 일부를 매입하고 대부분의 유품을 기증받기로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밝혔다.
강원도 양구군의 박수근미술관, 제주시의 이중섭미술관, 전남 목포시의 의제(허백련)미술관, 충북 청원군의 운보 김기창미술관 등이 2001~2002년에 걸쳐 일찌감치 화가의 고향에 자리 잡은 것을 볼 때 이응로 기념관 및 생가복원은 다소 늦은 감이 있을 정도다. 이는 고암에 대한 국내미술계와 평단이 뒤늦게 고암의 가치를 알아봤고, 그에 따라 고암에 대한 연구도 최근에야 본격화 됐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국내에 고암을 기리는 미술관으로 2007년에 개관한 대전이응노미술관이 주목을 받아왔다. 2005년도에 평창동의 이응노미술관이 폐관하면서 소장품을 인수한 대전이응노미술관은 고암이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1969년 3월에 출소하기까지 대전교도소에서 2년 6개월간 복역하며 옥중에서도 고추장과 간장을 물감 삼아 그림을 그리고 밥과 종이를 뭉쳐 수백 점에 달하는 작품을 남긴 고암의 예술혼을 기리고 있다.
대전에 이어 4년의 간격을 두고 고향인 홍성군에 들어서는 이응로 기념관은 다수의 소장품과 차별화된 전시기획으로 대전의 이응노미술관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고암의 생애를 보여주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홍성군은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이태호 교수를 명예관장으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명지대 미술사학과)을 비롯한 전문가들을 운영위원으로 위촉해 작품 선정과 심사에서부터 작품기획에 이르는 모든 단계의 자문을 얻어왔다. 운영위원들의 손과 발이 된 이는 윤후영 큐레이터이다.
윤 큐레이터는 “고암 이응로 화백의 일대기를 한 눈에 보여주는 기념관의 성격과 고암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의 성격이 공존하는 기념관으로 태어날 것”이라며, “작품 전시 이외에도 이응노 화백 관련 기념사업과 어린이 미술교육 등 기념관, 미술관, 교육장 등의 다양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홍성군 관계자는 “지역공원의 개념으로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다. 여름에는 연못에 연꽃이 한창이고 겨울에는 지역 주민들이 가꾼 보리밭도 볼 수 있다“며 “이응노 화백을 기리는 기념관이 딱딱하고 경직된 공간이 아니라 지역 주민과 어우러지는 따뜻한 공간으로 태어나길 바란다”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사후관리, 활용방안 논의돼야
하지만 개관이라는 축제를 앞두고 이응로 기념관이 앞으로 안게 될 과제도 생각해 봐야 할 때다. 홍성읍내와 다소 떨어진 불편한 접근성, 생가의 사후관리 및 활용 방안, 전문성을 갖춘 큐레이터 등의 추가 인력확보, 기념관 홍보 등의 문제들이 논의되어야 할 시점이다. 국내 각지에 각종 기념관이 들어서고 생가가 복원되지만 미흡한 관리로 그 실효성을 인정받지 못한 사례가 많다. 오히려 ‘국민의 혈세 낭비’라는 질타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이에 대해 홍성읍의 이모 씨는 “홍성군내에 김좌진장군 생가, 한용운 생가, 성삼문 선생 유허지 등 홍성군의 위인을 기리는 생가지들과 연계하여 하나의 관광벨트를 조성해야 할 것”이라며 기존 생가지들과의 연계를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달 28일자에 홍성군이 내놓은 2012년도 주요 시책에는 고암 이응로 기념관을 중심으로 ‘홍성아트빌리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미술관이 단순한 전시 공간에서 탈피해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미술교육·젊은작가 지원 등과 같은 제 3의 역할을 수행하는 예는 국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창작스튜디오 운영을 통해 역량 있는 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사업은 미술관의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어 왔다. 외부 혹은 지역의 예술가들이 상시 입주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지원하고, 이응로 기념관에서 그들의 작품을 기획전의 형태로 전시한다는 계획이다. 전국적으로 비교했을 때 문화예술 활동의 불모지라고도 할 수 있는 홍성군의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다면 박수칠만한 시도이다.
그러나 관주도로 이루어진 몇몇 레지던시 형태의 아트빌리지의 성과를 되돌아 볼 때, 홍성 아트빌리지 조성 사업도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다. 소수의 예술가들이 입주해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버리는 기획전이 홍성군의 문화예술 발전에 얼마만큼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무엇보다 군민들과 융화해 지역문화에 뿌리 깊게 정착한 후에 점차적으로 군민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뒷받침하는 멘토가 되어야 한다고 볼 때, 홍성군은 ‘예술촌을 조성해서 예술가들을 입주시키고 창작활동을 지원하겠다’라는 단기적인 기획이 아니라, 다양한 예술분야 중 예술촌의 성격, 특성을 명확히 설정하고, 예술촌을 기획·관리할 수 있는 전문가를 영입해 예술촌이 규모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며, 무엇보다 군민들의 문화예술향유욕구를 충족시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만한 예술촌과 군민참여가 능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장기적인 계획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역만리 타지에서도 언제나 월산과 용봉산으로 기억하는 내 고향 홍성을 그렸다는 고암 이응노. 그를 기리는 기념관과 복원된 생가가 곧 첫 선을 보인다. 준비기간이 길었던 만큼 군민들이 이응로 기념관에 거는 기대도 그만큼 커졌다. 고향과 나라를 뒤로한 서글픔을 예술혼으로 불살랐던 고암의 정신을 담은 공간이자 무엇보다 그간 미공개로 남았던 그의 유작을 비롯한 대작들을 감상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이응로 기념관으로 태어나길 기대하고 있다.이는 ‘고암은 홍성사람’이라는 홍성군민들의 자부심이 될 것이고, 대내외적으로는 홍성군의 인지도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고암 이응로 기념관이 홍성군내 문화예술활동의 새로운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진제공 : 홍성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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