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특별인터뷰] 함께 있어 완벽한 우리 “데니스, 네가 희망이야”
상태바
[창간특집 특별인터뷰] 함께 있어 완벽한 우리 “데니스, 네가 희망이야”
  • 김혜동 기자
  • 승인 2012.06.14 12: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불유리공예가 심현지 씨와 지적장애화가 데니스 한의 아름다운 동행

△ 데니스 한(Dennis Han)



국내 지역언론 최초로 밝히는 ‘데니스 한’과 이모 ‘심현지’의 특별한 사연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 짜리 다리~몸매는 끝내줘요~” 이 말만 들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영화가 있을 것이다. 7년 전 개봉돼 전 국민을 울고 웃게 만든 영화 ‘말아톤’. 자폐증을 가진 초원이가 엄마와 코치와 함께 고군분투하며 마라톤에 도전하는 모습은 각박해진 현대인들에게 가족애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의 편견에 굴하지 않고 장애라는 벽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는 초원이와 엄마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그를 세상으로 내보내 준 엄마와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점차 사회생활에 적응하고 있다고 한다.

초원이가 마라톤을 통해 세상으로의 용감한 걸음을 내딛었다면, 데니스 한(Dennis Han.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은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어릴 적 뇌성마비를 심하게 앓은 이후 정신지체장애인으로 서른 한 해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재미화가 데니스 한과 그의 미술적 재능을 끄집어내 세상과 연결시켜준 데니의 이모 심현지(광천읍. 71) 씨. 이 둘의 13년 간의 동행은 영화보다 더 진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 데니스 한의 이모 심현지 씨



두 살 때 앓은 뇌막염으로 장애인 돼
데니스 한은 2002년 서울 인사동 피쉬 갤러리에서의 초대전을 시작으로 2004년 빠리 유네스코 갤러리 초대전을 거쳐 올해 4월에는 미국 유엔본부에서 전시를 열었을 정도로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이번 유엔본부 전시에서는 반기문 총장이 작품 개막식에서 축하 연설을 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지난 4월 UN본부 전시 개막식에서 축하연설을 하고 있는 반기문 총장. 그 옆으로 데니스 한.



데니스 한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99년도부터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나고 자란 데니스 한이 19살이 되던 해 프랑스 빠리의 이모집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하얀 종이에 아무렇게나 그리던 습작들이 재불유리공예가였던 이모의 지도를 받으며 눈에 띄게 발전해 다양한 색채가 들어가는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이 그림들을 가지고 빠리의 한인침례교회에서 전시를 하며 많은 사람들이 데니스 한의 작품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모 심현지 씨는 데니스의 재능을 알아본 이후 데니스 한의 엄마를 설득했다.

“처음엔 데니스 엄마이자 내가 무척 아끼는 동생에게 파리에 사는 언니로서 그저 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데니스와의 파리 여행을 제안했다. 꼭 한 달만 데리고 있기로 하고, 그 한 달 동안 동생이 데니스와 떨어져 마치 휴가라도 즐기라는 양으로 던진 제안이었다....(중략)...한 달이 지나 데니스를 동생이 사는 미국으로 다시 돌려보냈는데, 그러고 나서 며칠이 지나지 않아 또 전화가 왔다....(중략)...데니스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며 당분간 데리고 있어 줄 수 없겠냐는 게다. ‘당분간’이란 시간은 얼마든지 치즈꼬리처럼 늘어날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중략)...데니스에게 나는 이모이자 엄마였고, 동시에 미술교사였다. 그렇게 우리를 규정하고 나니 데니스는 파리에 미술공부를 하기 위해 온 셈이었고, 또 하나의 새로운 가족을 갖기 위해 온 셈이었다”(‘데니스, 네가 희망이야(심현지 글)’ 중에서)

1999년 12월부터 데니스 한과 함께 살기 시작한 심현지 씨는 데니와 그의 그림과 함께 전 세계 곳곳을 자유롭게 누비고 있다.


△ Coucher de soleil(59X126), 2003, 데니스 한


심현지 씨와 데니스 한, 13년의 동행
‘설거지나 물걸레를 좋아하고, 틈만 나면 물을 가지고 노는 것으로 시간을 보냄’, ‘청결한 것을 좋아하며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자기 전에 목욕을 함’, ‘생선과 채소, 곡물, 과일 등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고 여전히 햄버거를 좋아하지만 먹으면 두드러기가 남’, ‘씹는 것을 종종 잊어버리기 때문에 숫자를 세면서 씹는 연습을 시킴’,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약을 먹어야 함(매우 중요)’, ‘잠자리에 들면 항상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손톱을 깨뭄’......
지난해 12월에 보령시 천북면사무소에서 열린 데니스 한의 전시 ‘AVEC’의 도록집 첫 장에 실린 심현지 씨의 기록이다.

데니스의 곁을 한 시도 멀리하지 않는 심 씨의 이 같은 기록은 데니스 한과 살기 시작한 첫 날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정신지체장애는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사고의 수준은 5살 난 아이의 머리에 머물러 있었으며, 간단한 대화도 이어나갈 수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경련이 와서 쓰러지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잠시 한 눈이라도 팔면 꼭 사고가 생겨 가슴을 쓸어내리는 날들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사실 심현지 씨는 한국의 근현대미술사에서 굵직한 위치에 있는 국내 1호 유리공예작가이다. 광천에서 태어나고 자라 1964년에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1971년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제네바 고전건축 미술학교를 수료했고, 빠리 국립생활조형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85년에 프랑스에서 첫 전시를 열었고, 해 마다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1990년대 후반까지 프랑스와 한국에서 수많은 전시회를 열어 호평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대한성공회 아가타성전의 색유리, 삼희기획 8층 로비 그림, 예술의 전당 색유리 그림과 프레스코, 한화그룹 조형연구소 조형물, 제일증권 조형물 등 그녀의 조형작품이 서울시 곳곳에서 랜드마크로 설치돼 있다.
심 씨는 데니와 살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예술혼을 조카에게로 집중했다. 그림을 그리고 색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다양한 전시와 화집을 보여주었다. 데니스 한의 색채는 마티스의 것을 닮았다. 데니스 한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바로 마티스라고 한다. 화집을 보며 틈틈이 모작을 했던 습관이 데니스 한의 독특한 그림세계를 완성시켰다. 예술가 이모의 전적인 보살핌과 애정 어린 지도가 화가 데니스 한을 탄생시킨 것이다.

다시 고향 광천으로 …수많은 ‘데니스’를 보듬는 세상 꿈꿔
대부분의 시간을 프랑스 빠리의 집에서 보내는 심 씨가 얼마 전 한국에 입국했고, 실로 오랜만에 광천 고향집을 찾았다. 물론 한시도 그녀와 떨어질 수 없는 데니스 한도 함께였다. 그녀가 부모님의 여생을 모시기 위해 오서산 중턱에 마련한 별장에서 여독을 풀고 있는 심현지 씨와 데니스 한을 만난 것은 지난 9일, 집에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 기자를 멀리서 맞이하는 심 씨의 가슴엔 오디가 주렁주렁 달린 뽕나무 가지가 한 가득이었다. 얼마 전부터 ‘누에’에게 관심이 생겨 키우기 시작했다는 심현지 씨는 “데니가 누에의 성장을 지켜보며 어떠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심 씨와 데니는 광천집에서 한동안 머물며 누에를 키우고, 오래전부터 그녀의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일을 천천히 실행시켜 볼 계획이라고 했다. 심 씨가 꿈꾸고 있는 일은 바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리며 양질의 수업을 받을 수 있는 학교의 설립이었다. 폐교위기에 놓인 농촌지역의 학교를 중심으로 새로운 교육매뉴얼을 적용시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레 어울리며 각자의 예술적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교육을 실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심 씨는 “폐교위기에 놓인 보령시 천북면에 소재한 낙동초등학교 관계자 분들과 마음이 통해 제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며, “다만, 외국과 한국의 시스템이 너무나 달라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많지만, 주변에 후원해주시는 지인들이 많아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심 씨의 소망 한 가운데에는 항상 데니스 한이 자리해 있다.

“순수한 영혼이다. 데니스의 힘은 늙지 않는 맑은 영혼이다. 영원히 그 순수함을 지닌 채 살아가는 데니스는 희망의 출구가 어디 놓였는지 이야기한다. 어쩌면 그런 순수한 영혼이 데니스가 존재하는 방식인지 모른다. 데니스는 그렇게 정상적인(?) 세상에 대해 비정상(?)의 대안을 말한다...(중략)...세상의 수많은 ‘데니스들’, 나는 그들을 보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의 세상이야말로 비로소 ‘정상적인’ 세상이며, 그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야말로 ‘선진사회’라 믿는다. 그 사회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첫 잣대가 있다면 그것은 마이너리티로 존재하는 수많은 ‘데니스들’ 그들을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보면 될 것이다. 경제, 인구, 군사력, 또 다른 무엇, 그 어떤 것도 이런 마음을 대신할 수 없다”(‘데니스, 네가 희망이야(심현지 글)’ 중에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