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일보 홍성=김용환 인턴기자] 홍성군농어업회의소는 지난 12일 농민·행정·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인 토론회를 열고, 통합형 농자재구매 지원사업을 주제로 정책 제안 발표회를 가졌다.
‘통합형 농자재구매 지원사업’은 흩어져 있는 여러 농자재 보조사업을 하나로 묶고, 정부가 정해둔 비료·비닐·농약 같은 물품을 현물 공급하거나 구입비를 보조하는 기존 지원 대신 농가에 일정 금액을 ‘지역화폐(특수 목적형)’등의 형태로 지급해 농민이 그 돈으로 지금 당장 필요한 농자재를 스스로 골라 살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 강마야 충남연구원 연구위원
강마야 연구위원은 농업인 27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현행 보조사업 체계의 한계를 지적했다. 홍성군은 농·축산 분야 200억 원 규모의 농자재 보조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응답자의 70%가 연간 3개 이하 사업만 받고 15%는 전혀 혜택을 못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강 연구위원은 “200여 개의 사업이 있는데 농민들이 알고 있는 것은 3개에 그친다”며 “나머지 197개는 어떤 식으로 집행되는지 모르는 회색지대 영역이다”라고 지적했다.
설문조사에서는 보조금만큼 농자재 가격이 인상되고, 대농에게 유리하며, 정보가 불투명하다는 문제점이 제기됐다. 공평성과 형평성에 대해서도 ‘정보를 아는 사람만 혜택을 본다’, ‘대농 위주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반면 농자재 지원사업 개편 필요성에는 78%가 동의했다. 200여 개 사업을 하나로 묶는 통합형 바우처 방식에도 78%가 찬성했으며, 지역화폐 전환 75%, 경작면적 비례 지급 64%가 동의해 개편 방향에 대한 공감대가 높았다.
강 연구위원이 제안한 통합형 농자재 구매 지원사업은 △200여 개 개별사업을 하나로 통합 △지원금은 지역화폐로 지급 △실제 경작자 전체 대상 △면적·작물별 차등 지급하되 차이는 최소화 △총사업비는 200억 원 수준 유지 △농자재 구입 전용 특수목적형 지역화폐 적용 등을 골자로 한다.
강 연구위원은 “농자재 보조사업 문제가 많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나오지만, 언제·누가·어떤 방식으로 개편할 것인지 논의는 미흡하다”며 “이번 통합형 지원체계를 계기로 현장·행정·의회가 함께 개선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상진 장곡면 대현1리 이장
정상진 이장은 현행 농자재 보조사업 체계를 두고 “혜택이 농민에게 아니라 업체로 흘러가고, 소농은 여전히 소외되는 구조”라며 근본적 개편을 촉구했다.
정 이장은 “3년차 마을 이장으로서 매년 수백 건의 공문을 받아 안내하지만, 실제 혜택을 받는 농가는 제한적이고 만족도가 높지 않은 사업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보조사업이 주로 대농 중심의 생산자단체나 의회 요청에 집중되고, 복잡한 정산 절차로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현행 보조사업의 문제점으로 △보조사업 시작 시 제품 가격 상승 △소농에 불리한 혜택 구조 △복잡한 행정절차 △유사중복사업 구분의 어려움을 제시했다. 특히 “보조율 50%라 해도 사업 채택 후 기준가격이 10% 이상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며, 그 차액은 농가가 아닌 업체의 이익으로 간다”고 지적했다.
통합형 농자재 구매 지원사업의 장점으로는 △농가 편의성과 행정력 효율성 향상 △공동구매를 통한 가격 협상력 강화 △과잉 구매 방지 △지역화폐 기반 지역경제 선순환등을 꼽았다.
다만, 정 이장은 “대농의 혜택 감소 가능성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고, 농자재 사업과 직결된 이해당사자들의 반발도 예상된다”며 “특히 기존 방식에 익숙한 고령농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구체적인 안내와 홍보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신용조 농업인
신용조 농업인은 농자재 지원사업의 근본적인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의 목적은 과도한 영농비용을 줄여 농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며, 경영 효율성이 떨어지고 경영비 부담이 큰 중소농이 정책의 주요 수혜자가 되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 농업인은 현행 농자재 보조사업의 문제점에 대해 “대농의 경쟁력이 상당히 높아졌고, 정책 지원 혜택도 중소농보다 과도하게 받고 있다”며 “지원금과 지원폭이 큰 특정 목적 정책 사업들은 여전히 대농이 평가에서 우선순위가 되고 큰 몫과 혜택을 가져간다”고 설명했다.
현물지원 방식의 비효율성도 지적했다. “동일 작목이라도 농가별 필요 농자재가 다르다”며 “획일적으로 지원하다 보니 불필요한 물품을 받게 되고 결국 방치·양도되는 사례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또한 “공급업체와 농협 등이 가격 형성 권한을 쥐고 있어 농민은 가격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성군 보조사업에 대해서는 “이 사업은 자치단체 의지만 있다면 시행이 어렵지 않은 분야”라며, 품목 세분화가 필요한 축산 분야를 제외하면 군비·도비로 충분히 추진 가능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필수 농자재 국비를 통합해 자율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필수 농자재를 일괄 지원하되 지역 단위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누수를 막을 수 있다”며 “수도나 전기처럼 공급 과정에서 새지 않도록 필수 농자재 지원도 직거래 형태로 농민에게 도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농림축산식품부 376개, 충남도 627개 사업으로 방만하게 운영되는 현행 체계를 효율적으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개선 방향으로는 △농업경영체 등록 제도 강화를 통한 투명성 확보 △농협중앙회·공급업체 감시 견제 △불필요한 유통단계·행정절차 축소를 제시했다.
■ 황바람 홍성군 친환경농정발전기획단 전문위원
황바람 전문위원은 행정공무원 입장에서 통합형 농자재 구매 지원사업의 성공적 전환을 위해 근본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전문위원은 “농·축산 관련 사업이 8~90여 개로 쪼개져 있는 탓에 농민도, 행정도 전체 규모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며 “필요한 농자재를 농민이 적정한 가격에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 품목과 방식을 통합해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 개선 초기에 농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효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공무원 입장에서 일도 많아지고 민원이 발생하는 등 업무가 복잡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이 ‘바뀌니까 진짜 좋다’고 느낄 수 있는 효능감이 초기에 확인돼야 제도가 제대로 안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충남도 차원의 통합지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홍성군 내부에서 실현 가능한 사업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떤 농자재부터 통합해 시작할지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지금 우리가 어떤 사업을, 누구에게, 얼마나 지원하고 있는지 현황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 기초 데이터부터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전문위원은 “농민이 중심에서 힘을 실어주고 행정과 군의회가 함께 움직이면 성공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최선경 홍성군의회 산업건설위원장
최선경 의원은 이번 토론회에 좋은 정책 제안이 나왔다며 ‘홍성군 통합형 농자재 지원사업 조례(안)’을 공개했다.
최 의원은 “좋은 정책이 제안된 만큼 예산을 확보하고, 타당한 근거를 갖춘 조례를 만들어 실제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의회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례안은 의성군의 맞춤형 농자재 지원사업을 벤치마킹해 홍성군의 실정에 맞게 설계한 것으로, 소모성 농자재를 효율적으로 통합 지원하기 위한 기본 구조가 담겼다. 조례안은 농업인의 편의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부서로 흩어져 있던 지원 사업을 하나의 체계로 묶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 의원은 이러한 조례안이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제대로 쓰이기 위해서는 여러 고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비·도비·타 기관 지원이 섞인 현 체계에서는 여러 사업을 묶어 집행하고 정산하기 어렵다”며 구조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의성군 사례를 언급하며 “의성군은 맞춤형 농자재 지원사업 예산을 기존 41억 원에서 62억 원으로 확대해 시행하고 있다”며 “반면 홍성군은 순수 군비로 운영되는 농자재 사업이 두 개, 약 14억 원 수준에 불과해 동일한 방식의 전면 도입은 아직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내년 예산 편성과 연계한 후속 과제도 제시했다. “어떤 사업을 묶고, 어느 부서가 주관하며, 헥타르당 지급인지, 농가당 균등 지급인지 등 구체적인 설계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우선 연구용역비를 확보해 통합형 농자재 지원체계의 기본 모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농업과 관련된 예산은 6.8% 정도 추가적인 증액이 필요한데 여전히 농업 분야가 힘도 없고 백도 없다”며 “농민이 더 당당해지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정책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의회도 농민과 함께하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