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전에 흔들리는 통합 논의… ‘흡수 통합’ 우려
[홍주일보 한기원 기자] 정치권이 추진 중인 충남·대전 행정통합을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오는 6월 3일 실시되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주민 의견수렴 절차 없이 통합 논의가 속도전에 내몰리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통합 논의 과정에서 통합시 명칭과 약칭이 일방적으로 정해지면서, 충남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흡수 통합’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충남·대전통합및충청지역발전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회의를 열고 통합특별시 명칭을 ‘충남대전통합특별시’로 정했다. 그러나 약칭을 ‘대전특별시’로 하기로 하면서 충남 지역사회의 반발을 불러왔다.
충남 지역에서는 “명칭에는 ‘충남’을 넣어 놓고, 실제 외부에 쓰이는 이름은 ‘대전특별시’로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흡수 통합의 본질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현재 인구 규모만 놓고 보더라도 충남은 약 220만 명, 대전은 144만 명 수준이다. 세대수 역시 충남이 약 106만 세대, 대전은 69만 세대로 격차가 크다. 여기에 천안·아산 등 충남 주요 도시의 인구가 110만 명을 넘어서며 도시 경쟁력 측면에서도 대전과 대등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통합 이후 지역 내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역의 한 향토사학자는 “사람에게 인명이 있듯, 땅에는 지명이 있다”며 “지명은 가장 겸허한 모국어이자 무형문화재로,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응축된 무언의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 번 잘못 정해진 지명은 본래의 뜻을 왜곡하고, 역사의 맥락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며 행정구역 명칭 결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역주민 이아무개(70) 씨는 “필요할 때만 ‘국민’을 앞세우고, 정작 중요한 결정에서는 주민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이 정치권의 고질병”이라며 “대전은 원래 충남에서 분리된 도시로,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충남의 일부였다”며 “부모를 지우는 통합은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시민사회단체와 지역 언론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대전은 충남에서 분리돼 성장한 도시임에도, 이제 와 ‘특별시’라는 이름으로 충남의 존재를 지우려는 것은 균형 발전이 아닌 흡수 통합”이라며 “통합 명칭과 약칭에서 드러난 인식 자체가 갈등의 씨앗”이라고 지적한다.
온라인상에서는 통합시 명칭을 둘러싼 풍자와 조롱도 이어지고 있다. ‘대전충남특별시’로 하되 약칭을 ‘대충시’로 하자는 글까지 등장하며, ‘대충대충 밀어붙이는 통합’이라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생략한 채 속도에만 집착한 결과라는 평가와 맞닿아 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2월 국회에서 관련 특별법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어, 지방선거를 불과 몇 달 앞둔 시점에서 주민자치의 본질인 민주적 절차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