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보상(負褓商)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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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보상(負褓商)을 만나다
  • 구재기 시인
  • 승인 2014.05.0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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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기 시인과 함께하는 시로 찾는 ‘너른 고을 홍성’ <44>

 


등짐을 지고
천 길, 만 길인들 못가랴
머리에 이고 있는
무게를 가늠하며 살아가랴

들길을 건너
고갯길, 고개를 넘어
물 흐름 따라 가다보면
보상 없는 짐이 어디 있으랴

삶의 무게는
덜어갈수록 무거워지는 것
무게 없이는
아무 것도 태어나지 않는다

알몸으로 태어나
머리 위에 인 짐을
굽어진 등에 얹힌 짐을, 어찌
다 버리면서 살아갈 수 있으랴

부보상(負褓商)이란 조선 시대의 행상인을 가리키는 말로 부상(負商: 등짐장수, 남자상인)과 보상(褓商: 봇짐장수, 여자 상인)을 이른다. 부상은 무게나 부피가 크고 값이 비교적 낮은 상품을 지게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판매하는 등짐장수를, 그리고 보상은 부피가 작고 가벼우며 비교적 비싼 상품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니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면서 판매하는 봇짐장수이다.

한국전통의 상인으로 불리는 부보상은 고조선시대부터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부보상들은 일제 강점기 때 장돌뱅이라고 천대를 받아왔지만 기실 그들은 상거래 활동을 하는데 있어 누구보다도 투철한 윤리 의식과 국가에 대한 충성 의식을 가지고 있다. 비록 사고무친(四顧無親)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신의를 바탕으로 한 행실규범, 즉 윤리의식으로서의 4대강령(四大綱領), 즉 물망언(勿妄言: 상업을 하는데 헛된 말을 하지 말라), 물패행(勿悖行: 패륜아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 물음란(勿淫亂: 음란한 짓을 하지 말라), 물도적(勿盜賊: 도둑질을 하지 말라) 등을 두고 궁극적으로는 국가에 충성하고자 하는 이념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상인 이상의 충성도 높은 집단이었다. 글로벌 경쟁력의 요소로 윤리의식이 강화되고 있는 이때 우리 몸에 걸맞는 전통상인들의 윤리의식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최선규의 <한국전통상인 보부상의 윤리 의식> 중에서)

이러한 부보상의 조직으로 충청남도 서해안 변에 인접하고 있는 홍성, 광천, 보령, 청양, 대흥, 결성 등 6군이 중심이 되어 하나의 상권을 형성하며 조직된 상무사 단체가 있다. 이른바 ‘원홍주 6군 상무사’이다. 상무사(商務社)란 등짐장수로만 이루어진 조직을 가리키는 말로서 1992년 7월 28일 문화부로부터 중요민속자료 제 30호로 지정된 원홍주등육군상무우사(元洪州等六郡常務右社)는 서해안변에 인접한 홍성, 광천, 보령, 청양, 대흥, 결성 등 여섯 곳을 중심으로 상권을 형성하여 결성한 부보상(負褓商) 단체를 말한다. 상무사에 전하는 청금록(靑衿錄: 중국 고대 선비들이 청백색의 깃을 단 옷을 입었다는 데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청금록에 오르면 유림 사회에서 동료로 인정받고 특권을 누린다)에 의하면 철종 2년(1851) 당시 대흥에 살던 임인손(林仁孫)이 그해 4월 조령(朝令)을 받고 처음으로 초대 접장(接長)에 피선되었다. 접장은 상무사 전반에 걸쳐 일체의 업무를 총괄하며 임기는 1년으로 되어있다. 당시 홍주, 결성, 보령, 청양, 대흥 등 5읍의 임방을 개설하고 임무를 감당할 사람을 택하여 여러 업무를 관장케 하였다.

육군상무사는 1901년 당시 접장 최덕주가 전래되던 상무사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청금록의 보수작업을 착수하면서 일부 기록을 보충, 보완하고 강주흠이 영위(領位)에 취임하여 명칭을 원홍주등육군상무우사(元洪州等六郡常務右社)로 개칭한데서 비롯되었다. 상무사는 본소(本所)와 임소(任所)를 두고 있으며 본소는 임소를 총괄하고, 임소는 장시(場市)가 열리는 지역마다 설치되어 시장을 운영하였다. 상무사의 최고 의결기관을 료중(僚中)이라 불렀으며 매년 총회를 개최하였다. 료중 산하에는 동몽청(童蒙廳)이 있으며 본소 상하에는 남양, 화성, 보령, 결성, 용호, 갈산, 오천, 홍도원, 옹암, 광천, 대흥, 홍성, 청양, 광시, 운곡, 평촌, 옥계 17개 임소가 있었다.

부보상 유품으로는 청금록 등 1괄 34점이 지정되어 있으며 종류로는 보부상 임원명단과 조직원 명단ㆍ조직규칙ㆍ공문서ㆍ인장 등이 있다. 이 자료들은 이 시기 상업경제사와 지방사회사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이며 귀중한 민속자료이다. 현재까지 상무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충남 부여, 예산 덕산, 아산과 강원도의 속초가 있으며 전라도지방에도 그 유품이 남아있다.

*부보상(負褓商)이란? : 조선의 태조왕이 하사한 옥도장(玉圖章)에 <유아부보상지인장唯我負褓商之印章>이란 명칭이 있듯이 ‘부보상’이 올바른 명칭이며, 1929년 조선 총독부가 ‘보부상’이라 고쳐 부르면서 지금까지 그대로 굳어져 왔음. 부보상이 정확한 명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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