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게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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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 서용덕 기자
  • 승인 2015.10.20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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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궁금하다> 홍성SNS서포터즈 신영근 회장

이사람이 궁금하다는 이번 주 지역에서 이슈가 된 인물을 만나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코너다. 이번에는 홍성역사인물축제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 홍성SNS서포터즈 신영근 회장을 만나봤다.<편집자 주>

▲ 홍성역사인물축제 현장에서 SNS를 통해 축제를 알리는 신영근 회장.

“치열하다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치열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죠. 지금도 잠시라도 가만히 못 있죠.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요.” 홍성군SNS서포터즈 신영근 회장은 이름보다 별명인 꽃다지로 더 유명하다. 신 회장이 운영하는 화원의 이름이기도 한 꽃다지는 십자화과의 두해살이풀로 ‘서울에서 평양까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을 노래한 민중가요 혼성그룹 ‘꽃다지’에서 따왔다.

신 회장은 올해 처음 창단된 홍성군SNS서포터즈 회장을 맡아 SNS서포터즈들과 함께 홍성역사인물축제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온라인 활동과도 인연이 깊은데 신 회장은 원광대정보통신동아리 창립 맴버로 PC통신 초기세대로 트위터는 7년, 페이스북은 6년전부터 사용해 활발한 온라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신 회장은 “초기에는 SNS서포터즈 회장을 가벼운 온라인 활동이라고 생각했는데 팸투어를 시작하고 홍성역사인물축제 홍보 UCC 등을 제작하며 서포터즈 회원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되고 군민들도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셔서 더 열심히하게 됐다”고 말했다. 홍성군SNS서포터즈는 자발적으로 홍성역사인물축제 홍보영상을 3편이나 제작해 SNS 등을 통해 홍보하는가 하면 이들의 활동이 방송과 신문 등 각종 언론매채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홍성역사인물축제 기간에는 실시간으로 SNS를 통해 축제소식을 전하며 홍성을 알리는 역할을 수행했다. 신 회장은 평범한 삶과 다소 떨어진 삶을 살았다. 한해 재수를 하고 1987년 원광대 원예학과에 입학한 신 회장은 1987년 6월 항쟁 등 민주화 열기를 타고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신 회장은 “시골에서 살다가 대학에 가서 넓은 세상을 보니 모든 것이 신기했죠. 대학에 진학하며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등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는데 무섭기도 했지만 몰랐던 진실을 알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죠”라고 말했다.

당시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은 전공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집회, 시위에만 나간다는 편견이 많았다. 그러나 신 회장은 대학시절동안 그런 편견을 깨나갔다. 원예학과학생회장직을 수행하며 빠지지 않고 수업에 나가고 학점도 4.2~4.3을 유지해 2학년부터 4학년까지 성적 장학금을 받는 등 전공 교수들도 신 회장을 높게 평가했다. 신 회장은 “운동권에 대한 편견이 싫어서 시작했는데 장학금도 받고 재미가 붙어 더 열심히 했습니다. 무식하게 공부하는 스타일인데 시험범위를 통째로 암기한 것을 그대로 써서 컨닝 의혹을 받기도 했죠”라고 말했다.

이후 신 회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1996년 고향인 홍성에 돌아와 홍성능금원예농협(현 충서원예농협)에 입사해 근무를 시작했다. 1997년 IMF사태 이후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욕구가 높아졌지만 신 회장은 반대로 고민이 들었다.

“근무를 마치고 매일 풍물을 배우고 운동을 하며 바쁘게 보냈지만 시계처럼 일상이 반복되니까 비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그때부터 신 회장은 매년 무슨 자격증이라도 하나씩 취득하자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다. 평소 청소년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청소년지도사를 비롯해 레크레이션 강사, 축구심판 등 14종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또한 대금, 피리, 드럼 등 각종 동서양의 악기 연주활동과 축구, 검도 등의 운동을 병행했다. 자격증 취득과 각종 동아리 활동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활동에 목마름을 느낀 신 회장은 7년 만에 농협을 그만두고 2002년 ‘꽃다지’ 화원을 열었다.

신 회장은 “고민하고 있을 때 한날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꽃집을 해보면 어떠냐고 했는데 당시에는 꽃가게를 개업할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었습니다. 안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 일은 잘 맞고 이곳이 사랑방처럼 친구나 아는 분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가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생업 외에도 각종 동아리 활동 등으로 바쁜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신 회장에게는 이런 활동이 삶의 원동력이다. 신 회장은 “일과 취미생활을 같이 하다보면 아무래도 밤 늦게 집에 들어가죠. 하지만 음악연주나 운동 등을 그만두면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축구 심판을 봐야하는 날이면 오늘은 어떤 경기가 펼쳐질지. 공연을 하는 날이면 어떻게 연주하고 공연을 펼칠지 등을 상상하면 즐거워져요. 그래서 이것들을 그만둔다면 또 다른 일을 찾지 않을까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일을 찾아 벌이는 신 회장은 누구나 자유롭게 공연 할 수 있는 공연장을 세우는 것을 꿈꾸고 있다. 신 회장은 “어느날 결성농요전수교육관을 갔는데 좋은 시설의 공연장이 새로 들어섰더군요. 그것을 보면서 나도 홍성에 이런 공연장을 세워서 개인, 단체 누구나 자유롭게 공연하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했으면 합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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