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만으로도 행복한 음식, 풀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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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만으로도 행복한 음식, 풀빵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7.12.06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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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전통시장

엄마네 과일가게 국화빵
노르스름하게 익어가며 고소한 냄새로 겨울철 사람의 발길을 머물게 만드는 엄마네 과일가게의 국화빵.

“엄니, 나…풀빵”
“가시나, 또 풀빵? 풀빵이 그렇게 좋으냐?”
“어, 세상에서 제일 맛나유~”

}풀빵 파는 아저씨는 군용 털모자를 눌러 쓰고 연탄불 앞에 앉아 부지런히 풀빵을 뒤집고 있다. 엄마가 내 준 100원을 아저씨에게 내밀며 그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아저씨가 누런 봉투에 5개를 담아준다. 혹여 풀빵이 찌그러질까 봉지 끝을 살짝 잡고 후후 불어 조금씩 뜯어 먹는다.
엄마에게 하나를 내밀어 보지만 엄마는 맛이 없다고 안 먹는다고 한다. 이렇게 맛있는데 말이다.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맛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홍성시장 엄마네 과일가게에서 국화빵을 팔고 있는 홍금자 대표는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국화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보통 10월 중순부터 다음 해 3월 정도까지 판다.

“여기 시장 안으로 들어온 지는 2달 밖에 안 됐지. 전에는 요기 둑에서 과일도 팔고 붕어빵도 팔았지. 20여 년 전 소방서 앞에서 붕어빵 팔았을 때는 장사가 무척 잘 됐지. 근데 요즘은 장사가 잘 안 돼. 그래도 장날에는 제법 되지. 밥 먹으러 들어갈 때 사가고, 밥 먹고 나오면서 천 원어치 사고, 장 보고 들어가면서 사고 그러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아주머니 두 분이 지나가며 말을 건다.
“아니 이게 누구여, 아줌마 언제 이리로 왔어?”
“두 달 밖에 안 됐어유. 이거 하나 자시고 가.”
“아~ 밥 먹었어.”
“밥은 밥이고, 풀빵은 풀빵이지.”
손사레 치는 아주머니에게 기어이 풀빵을 쥐어준다.
“그렇게 오가는 사람에게 하나씩 주면 뭐 남어유?”
“그냥 막 퍼 줘~”
그 사이 옆에서 김장을 하던 아주머니 한 분이 비닐봉투를 얻으러 왔다. 김치 양념이 묻어 있는 고무장갑으로 국화빵을 하나 집어 입에 넣는다.

“여깄슈. 나 인터뷰간 뭔가 혀. 이거 풀빵 찍어간대”
“이쁘게 찍어유, 여기 풀빵 맛나”
풀빵 하나를 다시 집어 입에 넣으며 가신다.
“진짜 막 퍼주시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맛을 봐야 맛있는 줄 알지, 안 그려?”

약간의 밀가루에 많은 물을 부어 만들었다 하여 풀빵으로 부르던 것이 이제는 국화빵, 붕어빵 등 이름과 모양, 앙금과 반죽이 다양해졌다. 가난했던 시절, 먹을 것이 부족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던 풀빵은 이제 기억으로 먹는 음식이 되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한 개, 엄마를 생각하며 한 개 먹다보면 어느새 봉투에는 팥고물조차 남아 있지 않는다.  

엄마네 과일가게에서 만드는 국화빵에는 호두가 들어가 씹는 맛이 더 고소하다. 국화빵을 열심히 뒤집는 아주머니가 달뜬 얼굴로 말한다.

“오늘은 호두가 떨어져서 안 들어가 미안허네, 어떡하지?”
메뉴:국화빵 5개 1000원, 계절 과일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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