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민자본주의
상태바
천민자본주의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1.11.03 13: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뉴욕 맨허튼섬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세계자본주의 경제의 총본산 인 월가에서 시작된 시위는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이것은 이윤의 추구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탐욕스런 자본가들에 대한 저항이며, 새로운 사회질서의 재편을 예고하는 것이라 하겠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부증불감(不增不減)’은 우주의 총질량은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음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지구상의 부(富)의 총량은 언제나 일정한데 분배가 고르지 못하기 때문에 불황과 호황이 반복되고 양극화가 심화되어 전 세계는 20만개 이상의 슬럼이 존재하며 10억 명 넘는 사람들이 가난과 질병 재앙 등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은 ‘순수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천민자본주의’의 문제이다. 자본주의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의 견해가 있지만 “자본주의는 합법적 이윤을, 직업으로서 조직적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정신적 태도”라고 정리한 막스베버의 정의가 가장 그 뜻이 명확하다. 따라서 막스베버의 정의에 비추어 보면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에 있다”라고 말하는 현재 미국과 한국의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기업윤리’를 찾아 볼 수 없다.

자본은 노동자가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생산물 이상으로 생산한 생산물인 ‘잉여생산물’에서부터 나온다. 이것은 개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이 잉여생산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어떤 농사꾼이 1000박스의 사과를 생산해서 10박스는 자신이 먹고, 남은 990박스를 판매를 했을 때 얻어지는 수익금을 말한다.

기업은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여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생산을 함으로서 더 많은 잉여생산물을 얻게 되고 그에 따른 자본이 창출된다. 그러므로 기업이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자본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분배의 정의를 실천 할 때 비로소 기업윤리를 말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400년 동안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배출한 조선최고의 경주 최 부자댁은 이 같은 기업윤리를 실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최 부자댁 역시 초기에는 여느 부자와 다름없이 자본을 모으기에 급급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해 극심한 흉년이 들어 민란이 일어나 곡간이 털렸고, 그 과정에서 식구들마저 죽임을 당했다. 숨어서 이 과정을 지켜본 최부자는 재물을 약탈해간 사람들이 다름 아닌 소작농과 동네사람들이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고,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자신들이 필요한 자본을 미리 정해놓고, 그 외에 생산되는 것들은 모두 이웃에게 돌려준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래서 자신들의 토지에서 얼마만큼의 쌀이 생산되든지 간에 가업에 필요한 만큼 만 거둬들이고 나머지는 이웃과 소작인들에게 돌려주었다. 이렇게 되자 소작인들이 신이 났다. 주인이 가져가는 양이 일정하니 일을 열심히 해서 소출을 많이 나면 날수록 자신의 것이 되니 말이다. 그래서 인근 사람들은 땅을 팔 때면 언제나 최 부자댁에 팔았고 그 땅을 다시 소작을 하니 날로 재산이 늘어났으며,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보살폈다고 한다.

이렇게 이어온 재산으로 독립운동을 도왔으며, 그것이 빌미가 되어 사업은 부도가 났고, 일본은행에 압류되어 절반가량을 빼앗기기도 했다. 해방이 되자 나라를 잃어버렸던 것은 교육에 소홀해서 신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라며, 전 재산을 대구대학(영남대학교전신) 재단에 기부하였다.

최 부자댁이 지방의 유지로서 학문을 검증 받는 과거에는 응하나 벼슬에 나가지 않음은 권력으로 재산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었으며, 재산은 만석이상 모으지 말고, 며느리는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야 하는 등 재물에 대한 절제와 검소한 생활, 사회에 대한 기부정신이야 말로 부(富)를 자신의 것이 아니라 사회공동의 재산으로 생각한 부자의 표상이라 할 수 있겠다.

최 부자댁이 지켰던 부자의 윤리는 어떤 이상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이 곧 자본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책무이다. 따라서 지금 월가에서 시작되어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민중들의 시위는 자본을 문제 삼자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에게 부자의 윤리와 책무를 다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 하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