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과 ‘심재(心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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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과 ‘심재(心齋)’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9.12.1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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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하늘에 석양빛이 가물거리고, 길 저문 나그네가 여관에 들려고 말을 재촉하는 저녁’(셰익스피어 ‘맥베스’) 무렵이면 새들은 깃을 접고 둥지로 날아든다. 사람들도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 되면 다사다난했던 일 년을 되돌아보고 감상에 젖기도 한다. 즐거움보다는 후회가 더 앞선다. 뜻한 일이 미완성이나 실패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욕망이 꿈틀거리며 무엇인가를 이뤄내려 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때로 욕망이 잘못 작동되면 삶이 힘들어지고 이웃과 불화(不和)를 자초하게 된다.

인간의 행동 밑면에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인간의 욕망은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정신적 에너지다. 욕망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욕동(慾動)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 욕동에는 식욕, 성욕과 같이 충족되면 잠시 사라지는 욕구도 있다. 이 욕구는 화내고 심술부리고 거짓말하고 시기하는 등등의 마음과 같은 것들이다. 퇴계도 이런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멀리하라고 가르쳤다. 퇴계뿐 아니라 주자학의 근본이 인의, 예지, 신애를 보름달처럼 크고 환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 시대에도 도덕국가를 실현하지 못했으니 사람이 쉽게 성인군자가 되기 어려운 모양이다.

사람들이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기에 역사는 유사하게 반복된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 듯싶다. 개인사도 그러하지만 우리 사회를 들여다봐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 몇 년 전에도 대통령 탄핵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더니 지금도 대통령 탄핵을 외치며 청와대 앞 주말은 요란하다. 그때도 ‘이게 나라냐?’라고 하던 구호가 지금도 같은 장소에서 반복된다. 왜 이들은(나는)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일까? 프로이드가 언급했던 ‘강박적 반복’(repetition compulsion) 현상일까?

대통령주변에서 국정을 농단하는 자들은 이성보다는 욕구가 더 강하게 작동되는 사람들이다. 권력욕, 재물욕이 이들을 비행의 선봉에 내세웠다. 이들은 저자거리의 보통사람들만도 못한 정치의식과 도덕성을 갖고 허울만 그럴듯한 정치라는 이름하에 욕심을 드러냈다. 이러한 자들은 지금만이 아니라 유구한 역사 속에 계속 존재해 왔다. 플라톤(BC428-348)도 이들이 지겨웠던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겨 놓았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도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적 소명의식이 없는 사람은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는 정치인의 됨됨이를 넘어서는 일이 없다. 미사여구로 나는 이런 정치를 하고 있다고 분식(扮飾)해도 그 사람의 현실에 대한 넓고 깊은 통찰이 없으면 헛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헛구호를 외치는 정치꾼의 모습은 말에 책임지지 않으며, 네 편 내 편을 가르고, 거짓이 드러나면 거짓으로 덮는다. 이들은 광장에서 군중을 말로 속인다. 그래서 서구의 희랍시대에도 웅변술이 발달하였다. 광장에 모인 군중을 말로 휘어잡는 자가 정치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근본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작게 보면 나도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과 정치를 하며 살아간다. 나의 언행에는 내가 비판하는 정치꾼의 모습은 없는지 들여다 볼 일이다. 하루, 아니 한해가 마무리 될 즈음이면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고 좌망(坐忘)해본다. 공자가 제자 안회에게 말했던 ‘심재(心齋)’라는 마음 굶기기를 화두처럼 붙들고 왔건만, 좀비 같은 욕심들이 몸의 여기저기에 달라붙어 올해도 농사를 망친 듯싶다.

김상구<청운대학교 영어과 교수·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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