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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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29
  • 한지윤
  • 승인 2020.02.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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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윤의 청소년 역사교육소설

전쟁이 없는 태평세월이라면 그 3년이란 기간도 잘 지켜지겠지만, 고구려와의 접경지대는 언제나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기 때문에 3년이란 건 그저 말 뿐, 3년이 6년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10년, 20년이 되는 수도 있었다.
군사가 된 지달은 용맹을 떨쳤다.
원래 익힌 무술이 있고, 또 날랜 몸이라, 군졸은 물론 장수들 조차 따르는 자가 별로 없었다.
지달은 항상 고향에 남기고 온 노화를 생각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큰 공을 세워서 뒷 날 돌아갈 때 노화를 기쁘게 해주리라 결심했다.
이래서 싸움마다 지달이 큰 공을 세우게 되니, 자연 그 이름이 조정 신하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지달…… 지달이 누구야? 그 놈이 바로 역적 아무개의 아들이 아닌가?”
한 기억력 좋은 신하가 지달의 근본을 밝혀내자, 지달의 앞길은 그만 콱 막혀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큰 공을 세워도 상이 내려지지 않았고 장수로 발탁되지도 않았다.
지달은 처음 공을 세웠을 때는 몇 번 상이 돌아오더니 그 후론 도무지 자기의 공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해 어느 날 상관인 장수에게 항의 비슷하게 물었다.
“이번 싸움에 내 공이 없지 않았는데 상이 없으니 이상한 일입니다.”
이 말을 들은 장수는 가소롭다는 듯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고 나서 한다는 말이 
“역적 놈이 자식이 주제를 알아야지, 병여 생활을 하게만 해 주는 것도 두터우신 국은인 줄도 모르고……”
장수의 말에 지달은 형언할 수 없는 모욕감과 울분을 느꼈다.
당장 칼을 들어 목에 꽃아 자결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꾹 참았다.
‘언제고 우리 집의 누명이 벗어지는 날 내 공도 인정 받을 날이 오겠지.’
지달은 혼자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후로 그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싸움이 있을 때마다 공은 세웠다. 나라에서는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자신은 끝까지 나라를 위해 죽을 각오를 다하고 싸움에 임했다.
“대장부로 태어나서 나라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노화가 하던 말이 생생하게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지달이 군사가 된 지도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2년 째 되던 어느 가을 날.
실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군중에 쫙 퍼졌다.
“고구려 군사가 비리마을을 기습하여 백성들을 몰살시키고, 곡식과 처녀들을 약탈해 갔단다.”
이 기막힌 소식을 들은 지달은 실신하고 말았다.
‘비리마을’은 곧 지달의 고향마을의 이름이었다.
동료군졸의 간호로 실신에서 깨어난 지달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백성들이 몰사했다고 하니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속절없이 돌아가신 게 틀림없고, 처녀들을 약탈해 갔다고 하니 노화가 잡혀간 게 분명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 시도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내심 참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도, 이런 참변의 소식에는 신중해질 수 없었다.
그날 밤으로 당장 병태를 탈출하여 비니마을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군복을 그대로 입고 가면 의심을 받을까봐 도중에서 군복을 벗어 내팽겨쳐 버리고 백성 집으로 찾아가 낡은 옷 한 벌을 얻어 입었다.
밤낮으로 달려 사흘 만에 비리마을에 도착한 지달은 정말 가슴을 예리한 칼로 후벼대는 것 같았다.
오순도순 그 정답던 마을이 어느새 잿더미가 되어버렸고,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없었다.
한참 동안 서 있다가 지달은 눈어림으로 옛날 자기 집이 있던 곳에 가 보니 집이 탄 재만 소복이 쌓여 있을 뿐, 아버지와 어머니의 시체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
눈물을 뿌리며 노화의 집 터전으로 가보니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지달은 이웃 마을로 갔다. 진상을 수소문 해 볼 작정으로…….
이웃 마을로 간 지달은 한 농부를 잡고 물어 보았더니, 
“밤중에 놈들이 들이닥쳤어요. 들이닥치자마자 온 마을의 곡식과 젊은 여자들을 약탈하고선 울부짖는 마을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렸어요. 그리고는 집집마다 불을 질러 놓고 가버렸지요.”
“그럼 살아남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나요?”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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