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년을 함께 한 남편이 떠난 후
상태바
60여년을 함께 한 남편이 떠난 후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0.02.20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부라는 단어는 참으로 신기하다. 부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해 함께 사는 모습처럼, 다정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라도 언제까지 함께 할 수는 없다. 이혼을 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헤어지게 된다. 영화 노트북의 마지막 장면처럼, 한 날, 한 시에 부부가 죽고 싶은 소망과 달리 현실은 그렇지 않다.

5일 전 출근길, 이웃집 어르신을 인근 병원에 모시고 갔다. 2차 의료기관에서 받은 어르신의 건강검진 결과표를 원장님께 보여드렸다. 결과를 보신 원장님은 어르신, 이 정도면 잘 살고 계신 거예요. 남자 어르신이 돌아가신지 3개월밖에 안 되었잖아요라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검진 결과를 보면 큰 병은 없었다. 다만 고령으로 인한 고혈압, 당뇨, 뇌심혈관 등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르신은 소화가 잘 안 되고, 잠을 못 자겠다고 불편감을 호소했다.

2주 후에 다시 오기로 예약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출근 시간이 촉박해 어르신을 모셔다 드리지 못하고, 병원 앞에서 헤어졌다. 백미러를 보니 어르신은 우두커니 서서 한 없이 내 차를 바라보고 서 계셨다. 마음에 묘한 파문이 일었다.

어르신 부부를 처음 만난 날은 수십 년 전, 지금 살던 집으로 이사를 오던 날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 그 날, 이웃집 남자 어르신은 일부러 오셔서 장롱이며 식탁 같은 이삿짐을 옮겨주셨다. 그 이후 채소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을 위해 봄에는 돌나물을, 여름에는 상추를, 가을에는 쪽파와 고추 등을 재배해 우리 가족이 먹을 수 있도록 나눠주셨다. 특히 집 주변에 풀들이 기지개를 필 때면 손수 그것을 깎아주셨고, 가을이 되면 나무에서 먹음직스럽게 익은 홍시를 현관 앞에 갖다 놓으셨다. 가끔 마당이나 비닐하우스에서 두 분이 일하면서 큰 소리가 나는 것을 들을 때도 있었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면서 두런두런 함께 하는 모습을 뵐 때도 많았다.

그런데 지난 늦가을, 남자 어르신이 병원에 입원하셨고 3일 만에 패혈증으로 돌아가셨다. 급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이었기에 마음이 먹먹했다. 돌아가시기 전, 출근길에 뵌 남자 어르신에게 어디 가세요?”라고 여쭈었을 때, 병원에 간다고 하셨다. 그 때 나는 출근 시간이 촉박해, “잘 다녀 오세요라고 인사를 하며 출근을 해야 했다. 그 상황을 생각하면 마음에 아쉬움이 몰려온다.

이웃집에 산 내 마음에도 아쉬움이 남는데, 60여년을 같이 살아온 남편을 떠나보낸 후 어르신이 느낄 아쉬움은 얼마나 클까. 그 마음의 허전함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하루도 마음 편히 잠을 잘 수가 없고, 음식을 먹어도 몸은 소화를 시키지 못한다. 어르신은 할아배가 5년만 더 살았더라면그리움에 말을 잇지 못하신다.

애착이론의 창시자 존 볼비는 죽음을 맞이한 유가족의 애도(bereavement)4단계로 정리했다. 1단계는 초기 절망 단계로 수일에서 수 주간 지속되며, 죽음을 믿을 수 없어 부인하고 저항하며 멍해진다. 2단계는 강한 그리움 단계로 수주에서 수개월간 지속되며 고인과 연관된 장소를 찾거나 유품을 보는 등 그에 대한 강한 그리움에 빠진다. 3단계는 와해와 절망 단계로 수개월간 지속되며, 죽음을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닫고 깊은 절망과 허무를 느낀다. 그러므로 의욕과 감동을 상실하고 목표나 삶의 동기를 잃으면서 수면장애, 식욕저하 등을 경험한다. 4단계는 회복 단계로 수개월에서 수년간 지속되며,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이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다시금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다.

곧 이웃집 여자 어르신은 애도의 2-3단계로 볼 수 있다. 슬픔의 시간을 지나기 위해 함께 했던 시간들을 정신적으로 잘 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노인정에도 가시고, 평소 하시던 종교 활동을 지속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슬픔이 몰려올 때는 그 감정을 느끼는 것이 좋다. 표현할 수 있는 슬픔은 표현하고,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은 그 슬픔과 함께 머무르는 것이 좋다. 슬픔을 느끼고 슬픔과 머물다 보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새로운 감정이 찾아온다.

오늘,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마음을 느끼고 표현해보면 어떨까요?

 

최명옥<한국정보화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박사·칼럼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