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자, 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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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자, 마을회관
  • 김옥선 칼럼위원
  • 승인 2020.05.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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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마을회관이 폐쇄된 지 100여 일이 되어간다. 마을 어르신들은 마을회관에 갈 수 없으니 심심하다고 한다. 농번기가 시작되어도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것에 갑갑함을 느끼는 것이다. 기상예보를 보면 올여름 폭염 일수가 25일이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무더위쉼터로 운영되는 마을회관 개방이 이뤄질지 내심 걱정도 되는 상황이다.  

마을회관은 일제강점기 공회당으로 시작해 새마을운동이 본격화된 1970년대 전국 대부분의 농촌에 건립됐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마을회의를 할 공공의 장소가 필요함에 따른 것이다. 1973년 대통령령에 의해 설치된 내무부직제인 내무부 지방국 새마을지도과에서 1975년에 발행한 ‘새마을운동 길라잡이’에는 새마을운동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방법 등이 서술돼 있다. 이중 마을회관에 대한 정의와 활용도를 살펴봤다. 

먼저 마을회관을 ‘마을에서의 여러 가지 행사를 개최하고 주민의 공통관심사가 되는 일을 토의해 지혜를 모으고 협동의 계기를 마련하는 장소’라고 정의한다. 새마을운동의 이념인 근면, 성실, 협동의 이념이 들어있는 대목이다.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대개의 우리 농촌의 경우 마을회관이 있지만 회관만 지어놓고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애써 지어놓은 마을회관을 그대로 놀릴 것이 아니라 이를 생산적으로 활용해 나가야 되겠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영농기술과 사회교육의 교육장으로써, 탁아소 또는 유치원으로, 소규모 공장, 가내부업장 등 농가소득 향상을 위한 생산관으로, 각종 후생시설을 확충해 주민 복지 향상을 위한 종합복지관으로 연중 활용함으로써 새마을운동의 요람이며 산실의 역할을 하게 된다고 기술했다. 

5월에 조사활동을 갔던 은하면의 한 마을에는 새마을운동 당시 건립된 구(舊) 마을회관이 마을 중앙에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다. 1998년 무렵 지금의 마을회관을 건립하면서 구 마을회관은 개인 소유로 넘어갔기에 주민 모두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주민들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는 부분도 있다. 구 마을회관에서가 가장 재미있었던 시기였다는 것이다. 구 마을회관에는 구판장을 만들어 막걸리, 과자, 국수 등을 판매하기도 했고, 명절이면 외지로 나간 청년들이 돌아와 마을회관에 모여 어르신들에게 세배를 했으며, 애경사가 있을 시 국수를 삶고, 풍물을 치며 즐겁게 놀았다. 마을회관이 마을주민 모두가 흥겹게 노는 장소였던 것이다. 

지금의 마을회관은 고령화로 인해 노인정 역할을 대신하기에 비교적 젊은 5~60대는 마을회관 이용이 상대적으로 적다. 마을총회가 아니고서는 잘 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각자의 생계를 이어가야 하기에 회관을 갈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도 있지만 말이다. 각자의 개별화된 삶이 마을회관에 주민들이 모이는 횟수를 점점 줄여가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더불어 획일적인 마을회관 건축양식도 한 번쯤은 되새겨 볼 일이다.

대부분의 마을회관은 할머니 방과 할아버지 방, 거실, 부엌, 화장실로 나눠진다. 은하면의 구 마을회관은 방 구분 없이 확 트인 넓은 공간에 의자만 놓여있고 부엌의 형태만 갖추고 있다. 남녀가 구분없이 한 공간에서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곳이 마을회관이었다. 우리는 요즘 농촌문화 복원 혹은 마을공동체를 위한 복합커뮤니티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거론한다. 거대한 이념이나 논리에 의한 농촌문화의 복원이 아닌 과거 농촌사회를 들여다보며 농촌문화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농촌문화를 복원하는 일, 어쩌면 마을회관에 그 해답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옥선<홍성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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