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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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km
  • 조남민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0.09.26 08: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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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작년 이맘때 일이다. 10월의 징검다리 휴일을 이용한 ‘뭐 재미있는 일’을 찾던 중 우연히 발견한 사이트는 ‘자전거 행복나눔’이었다. 이곳은 자전거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있었는데 정부기관인 행정안전부에서 운영하는 것이 신기했다.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자전거 국토종주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함께 구간별로 매우 자세한 지도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가슴이 살짝 뛰었다. 평범한 자전거로 국토종주에 성공했다는 ‘아재’들의 글을 몇 개 읽고 나니 근원을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생겼고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어찌어찌 자전거도 구하고, 엉덩이에 패드가 달린 얄궂은 자전거 바지도 구입하고 길을 나서기까지 적어도 일주일은 걸렸다.

드디어 자전거 국토종주의 시발점인 인천 아라뱃길에 섰다. 인증샷이랍시고 당시 찍었던 사진을 들춰보니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그때는 나름대로 꽤 비장했던 것 같다. 이 길로 쭉 내려가면 부산 을숙도까지 633km, 과연 혼자 갈 수 있을까, 못할 것도 없지 뭐, 그러다가 조금 무리해서 3박 4일 안에 도착하는 것으로 목표를 세웠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인천을 출발했다. 서해에서 부는 살랑바람이 정다웠고, 간간이 고개 들어 바라본 10월의 하늘은 정말로 푸르고 공활했다. 시원한 한강을 바라보며 서울로 접어드는 내내 너무나 즐거웠고 너무나 놀랐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생각보다 훨씬 잘 만들어져 있었고, 자전거를 즐기는 인파가 상당했으며, 자전거길이 놀랍도록 평지에 가까웠는데 이는 팔당댐을 지나 양평, 여주에 이르기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강변을 따라 조성했기로서니 이렇게나 길이 훌륭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도 모르게 싸이의 ‘예술이야’를 큰 소리로 부르며 페달을 밟았다. 남한강변을 지나며 펼쳐지는 풍경에 눈물이 났다거나 조국 강산의 아름다운 모습에 벅찬 감동을 느꼈다는 여러 글이 생각났고 이에 격한 공감이 일었다. 충주 비내섬을 지날 때는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싶을 정도의 비경을 봤으며, 가을꽃이 만발한 창녕 남지, 삼랑진 철교, 낙동강 하류의 물결에서 평화를 봤다. 또한 자전거 전용도로가 갖는 안전함, 잘 정비된 이정표와 구간거리, 틈틈이 만나는 동행자들, 적당한 거리마다 나타나는 스템프 인증 등의 장치들이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문경에서는 사과를, 낙동강 칠백리가 시작되는 상주에서는 잘 익은 감을 맛보았는데 하나같이 꿀맛이었다. 무인 판매대의 얼음물이나, 편의점의 캔맥주, 길거리 토스트도 빼놓으면 섭섭할 일이다. 숙소로 삼았던 여주 신륵사 바로 앞 허름한 여관의 갈비탕, 문경 점촌읍 찜질방의 따뜻한 국밥, 합천 적포교의 낡은 모텔에서 시켜 먹었던 쫀득한 부산통닭도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있었으니, 이화령을 넘을 때 냈던 곡소리가 그 시초다. 아이유 3단 고개가 너무 쉬웠던 탓일까, 그 뒤로 만나는 박진고개, 영아지 고개, 무심사 비탈길...모두 고난과 환난의 연속이었다. 예술이야는 첫날 하루 뿐이었다. 하루 열시간이 넘는 페달링으로 지친 다리근육은 물론 손목 어깨까지 마비되어 밤마다 끙끙 앓았고, 넘어져서 접질리고, 까지고, 체인 끼우느라 기름 범벅이 되는 통에, 을숙도에 도착했을 땐 거의 거지꼴이 되었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은 안장에 닿았던 피부가 헐어서 한 달간 고생했던 흉터와 책상위에 놓여진 국토종주 완주 메달만 덩그러니 남았다.

깊어가는 가을, 자전거가 그려진 메달을 바라보니 어쩐지 또 가슴이 뛴다.   

 

조남민 <홍성문화원 사무국장·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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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제 2020-09-26 15:29:16
대단 하고 멋 까지 있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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