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고민이 필요한 인물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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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고민이 필요한 인물축제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04.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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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역사인물축제’가 서막을 열었다. 다음달 14일부터 사흘간 개최될 예정인 이번 홍성역사인물축제가 열리려면 한 달가량 남았지만 3월부터 본격적인 홍보가 시작됐고 거리 곳곳에 알림판과 홍보 탑들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축제란 본래 어떤 주제를 선정해 널리 알리는 목적의 행사이다. 그렇다보니 배우고 공부하는 것 보다는 먹고 마시며 흥겹게 즐기는 쪽에 가까워 어떤 교훈이나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임에는 틀림없다. 

우리 홍성은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어렵다고 하는 역사인물축제를 선택했고 그간 외형적으로는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지만 여러 곳에서 분명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비근한 예로 하나만 짚어 보면 만해를 주제로 진행됐던 재작년에는 만해 분장에서 장삼(우리고유의 전통예복) 등을 중국에서 수입한 중국식 옷을 입고 다니는 일이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진대회에 참가한 전국의 작가들이 만해분장을 한 출연자에게 여러 자세를 부탁해가며 축제를 대표하는 작품사진으로 찍는 것이었다. 지켜보면서도 설명 할 수도 말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저 안타깝고, 부끄러울 뿐이었다. 그야말로 전국에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순간이었으니…

어쨌든 축제를 여는 것은 우리고장을 널리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남의 것을 배워 흉내내기보다는 우리 것에 충실해야 한다. 특히 올해의 이응노화백은 더욱 그렇다. 예술은 심(心), 의식(意識)의 외화(外化)라는 측면이 다른 무엇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고향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각인 된다’고 한다. 그것은 동물들도 마찬가지여서 오리는 깨어나서 처음 마주치는 개체를 어미로 각인해 사람을 졸졸 따라 다니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그래서 필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응노의 작품에서 그에게 각인돼 있는 고향 즉, 홍성을 읽어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작업이 없다면 굳이 재판까지 해가며 이응노의 고향이 홍성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생가지를 복원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근본적 고민이 없다보니 이번 축제에서 “LEE UNG NO”라는 영어식의 이상한 홍보물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이응노는 서당훈장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림은 영친왕의 스승이자 당대 명필이었던 해강 김규진으로부터 사군자를 배우며 시작됐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서양화를 배우고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사의적추상(寫意的抽象)’을 거쳐 ‘서예적추상(書藝的抽象)’, 즉 문자추상이라는 독자의 길을 완성한다. 여기에 대해 전문가들은 그의 작품은 동양적 표현과 정신이 밀착된 특질로서 국제적 위상을 실현시켰다고 정의 한다. 다시 말하면 죽사(竹史), 고암(顧菴)이라는 호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그는 각인된 홍성을 바탕으로 동양정신을 가슴에 새긴 한국인으로서 전 세계에 자신의 역량을 펼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양을 닮아가고 영어를 배우는 것이 세계화가 아니라 우리의 것, 우리의 줏대로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었음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 분명하다.

축제를 알리는 “LEE UNG NO”라는 홍보물과 ‘hero festival’이라는 문구는 그가 걸어온 길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 특히 그를 대표하고 세계가 극찬하는 수많은 작품은 물론 ‘문자추상’, ‘군상’과 같은 작품을 배경으로 홍보물을 만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도 말이다.

한글의 우수성은 제쳐 두고라도 한류의 영향으로 세계적으로 한글 배우기 열풍이 일고 있는 이때에 그가 일찍이 걸었고 선보였던 문자추상을 한층 더 내세우는 것이 내실 있는 축제요 세계화가 분명 할 텐데, 그의 삶에도 맞지 않고, 단어의 의미도 부합하지 않는 “LEE UNG NO hero festival”이라는 이상한 홍보물은 오히려 축제의 의미를 훼손한다.    

올림픽에서 태권도 경기가 우리말로 진행돼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데서 본다면, 이번 홍성역사인물축제 홍보물 기획은 이미 세계적인 예술가 이응노를 축제라는 이름으로 우리 스스로 평가절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범상스님 <석불사 주지·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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