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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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선생님
  • 이상헌 <홍주고등학교 교장>
  • 승인 2021.05.1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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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스승의 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다. 부모들이 힘들어하는, 주머니가 비는 달이기도 하다. 특히 스승의 날이 있지만, 그날이 기다려지지 않고 그날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30년이 넘는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 왔지만 가면 갈수록 더 힘든 직업이다. 그런데도 많은 교육대와 사범대를 졸업한 학생들이 그 어려운 임용고사에 합격하고 교사의 길을 걷는다. 

필자가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은 참 좋은 시절을 보냈다. 반장을 불러 교안을 주면서 칠판에 적도록 하거나 읽어주면 우리는 칠판에 판서한 것을 쓰거나 반장이 읽어주는 내용을 받아적었다. 선생님은 교실 구석에서 운동장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다. 떠들면 때리고 월말고사나 중간 기말고사 성적이 50점 이하면 사랑의 매라고 하는 체벌을 했다. 부모님과 우린 그런 체벌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러려니 했었다.

잘못한 행동을 하면 으레 맞는다고 생각했다. 매를 맞으면서 무릎을 꿇고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를 여러 번 반복하고 나서야 체벌은 끝이 났다. 그것으로 생활지도는 끝이었다. 맞을 짓을 했으니 당연히 맞아야 하고 또 앞으로 잘못을 하거든 더 때려달라는 학부모의 말씀을 들었었다. ‘꽃으로라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요즘 훈육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할 일이 근 50년 전 필자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 있었다. 

시험을 치른 후 시험문제의 오류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출제자의 의도라면서 되레 혼났다. 시험문제는 문제집에서 한 글자의 가감 없이 그대로 출제했다. 가히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다. 돌이켜보면 보충수업과 야간 자기주도적 학습도 없는 그 시절의 선생님은 최고의 직업이었다.
이렇게 수월했던 시절에도 ‘훈장 똥은 개도 먹지 않는다’라고 했으니 요즘 교사의 것은 파리조차 멀리하지 않을까. 얼마나 힘들면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교사가 많을까. 

“시험문제를 출제하고는 문제에 문제가 있을지 걱정됩니다. 채점하고 나면 어떤 학생이, 학부모가 이의제기할지 몰라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명퇴하려고요.” 명퇴를 신청하는 선생님과 나눈 내용이다. 시험문제 출제와 가르치는 일이 너무 힘이 든다. 거기에 생활지도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아울러 진로 진학지도는 얼마나 어려운가?

스승의 날에 꽃바구니를 들고 온 제자가 있었다. 근 30년이 돼 전화가 와 주차장으로 마중을 나갔다. 몇몇 학생들이 있는데 넙죽 큰절을 올린다.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선생님 왜 이렇게 늙으셨어요.”

눈물을 흘리는 제자를 보면서 필자도 눈물을 흘렸다. 중국 근대 유명한 시인인 서지마(徐志摩)의 ‘우연’이란 시를 가르친 생각이 난다. ‘기억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것은 잊는 것이다(記得也好 最好忘記)’ 잊어버리라고 가르쳤는데 잊지 말라는 반어법이었던가. 제자는 학창 시절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서울의 명문고 모 교사는 30여 년의 교무수첩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란다.

필자는 담임 다음 해에는 반드시 교무수첩을 폐기했다. 잊기 위한 한 방편이었다. 제자는 옛날 학교 이야기를 한참 동안 했다. 그 바람에 필자는 30년 전으로 잠시 들어갔다. 망각이 가장 무섭기도 하고 가장 좋기도 하다. 잊을 건 잊어야 하는데 잊지 않는다. 그만큼 교사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열정을 가지고 가르쳐야 한다. 선생님을 본보기로 자태와 글씨체까지 닮는다. 그만큼 교사는 학생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자동차 정비 등 기계를 만지는 일은 30여 년을 종사하면 기술자가 되고 또 명장이 된다. 버스회사에서 망치를 들고 타이어를 ‘탕탕’ 치고, 또 엔진 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문제가 있는지 안다. 교사는 30년 이상을 해도 그런 경지에 다다르지 못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쌍방향 수업 준비 등으로 교사의 어깨는 더 무거워지고 아이들과 학부모와 소통 부재로 틈은 더 벌어진다. 

교사의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가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해맑은 미소를 짓는 그 날이 오기는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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