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무엇을 남기고 떠나는가” - 故 주병찬 님의 영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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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을 남기고 떠나는가” - 故 주병찬 님의 영전에서
  • 주호창 <광천노인대학장>
  • 승인 2021.09.13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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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으로 유난히도 무더웠던 올해 여름은 자연의 섭리로 서늘한 가을이 됐건만 난데없이 불청객으로 찾아온 코로나는 아직도 떠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느덧 8월의 마지막 주일인 지난달 29일 오전 주병찬 전 홍동농협조합장님께서 간밤에 소천하셨다는 비보를 들었다. 당일 아침 일찍 영전에서 그분의 생애를 돌아보며 ‘인간은 무엇을 남기고 떠나는가!’라는 생각이 떠올라 조심스럽게 추모의 글을 쓰게 됐다.

인간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하지만 사실은 빈손으로 왔다가 갈 때는 육신이야 한 줌의 흙으로 남아도 이 세상에 이름을 비롯해 재산이나 명예나 업적을 남기고 떠나게 된다.

고인의 삶은 초등학교(홍주초, 홍동초)에서 교사로의 첫 출발이 사회생활의 견인차가 됐으며 역시 탁월한 지도력은 초등학교 교사로 안주할 수 없었다. 평소에 염원했던 대로 1970년대 낙후된 농촌을 위해 홍동농협의 창립자로 조합장에 취임해 4선의 역량을 발휘해 오늘날에 기반을 다져놨다. 역시 능숙한 조합 운영과 원만한 대인관계는 많은 이들에게 칭송과 인정을 받아 1990년대에 홍성농지개량조합장으로 영전해 3선의 고지에 등극했다.

뒤이어 농업기반공사 중앙대의원으로 봉사했으며 활동무대를 신안 주씨 지역종친회장으로 전환해 다년간 희생 봉사했다. 변함없는 열정으로 종친회장 임기동안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창주사를 향토유적지로 지정하는 일에 불철주야로 지대한 관심을 갖고 수시로 창주사를 오르내리며 보살폈다. 한편 중앙종친회 종로로서 지역종친회와의 교량 역할을 하시며 모든 행사 때마다 원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참석했다.

평소 생활신조는 ‘삶은 넓게 보자’, ‘큰 목표를 세우자’, ‘최선을 다하자’로 살아왔으며 가정에서도 남달리 자녀들을 위해 수많은 역경을 견디고 헌신했으며 이웃의 어려움을 내 일처럼 해결해 줬다. 많은 이들에게 취업의 알선이나 상담자가 됐고, 소속된 직장이나 단체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희생 봉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측근에서 보고 들은 바에 의하면 농지개량조합장으로 근무할 때도 급여를 사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직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친교 비용으로 사용한 적이 많으며, 종친회장 판공비도 종친회에 협찬해 운영비로 활용하도록 했다.

평소에도 건강을 위해서 규칙적으로 생활했으며, 항상 손에는 신문이나 정보지를 들고 다녀 세상 물정에 해박했고, 가끔 걷기 운동을 할 때면 보폭을 넓게 팔을 힘차게 내젓는 모습은 90대 어르신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여러 행사의 절차에도 철저하고 평소 예의범절은 타의 귀감이 돼 창정마을회관 건립에 대지를 흔쾌히 기부했고 촌장으로서 여러 가지 문제에 해결사로서 큰 역할을 했다. 오랫동안 유교를 숭상하시다가 근년에는 기독교 신앙에 돈독한 자녀들의 권유로 부부가 교회에 출석해 집사 직분을 받았다.

5개월여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매일 같이 문병하는 자녀들에게 미안하다 전하며, 마지막 운명하는 순간에는 살짝 미소를 머금은 평안한 모습에 자녀들은 천국에 가심을 확신했다고 한다.

분명 모든 사람은 한번 왔다 가는데 결국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남기고 가는데 고 주병찬 전 조합장님은 문중과 지역에 큰 별로 남으셨다.

항상 사물을 사색하고 통찰하시며 오랜 경험과 달관으로 많은 이들의 리더와 후원자로서 한 생애를 멋지게 마감했다. 이제 그 크고 넓은 빈자리를 과연 누가 채울 것인가! 황망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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