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의 유교 잡지 ‘인도’와 한국 근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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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유교 잡지 ‘인도’와 한국 근대문학
  • 박태일 <시인·경남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1.11.0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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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표는 충남 홍성에서 나온 유교 전문 잡지 ‘인도’를 대상으로 그것의 실재를 널리 바르게 밝히고, 그 안에 담긴 근대문학의 특성을 구명하는 목표로 이뤄진다. 

첫째, 인도는 홍성 유림을 대표하는 유교부식회 기관 잡지로서 1929년 6월 창간호부터 1931년 3월까지 8권이 나왔다. 월간을 겨냥했으나 검열로 말미암아 합호와 결호를 거듭했다. 호당 3000부에서 5000부까지 낸 것으로 보이는 인도의 유통 범위는 홍성을 중심으로 충남북 일대와 영호남에 걸쳤고 멀리 만주까지 미쳤다. 

둘째, ‘인도’의 글쓴이는 거의 유교부식회 회원이거나 내집단 사람이다. 이들은 세대로나 연결망으로나 홍성 유교부식회 내부자와 홍성 지역 청년 지도층 인사라는 동질성이 강한 특성을 지녔다. 그 중심에 김복한 가문과 학연이 놓인다. 따라서 글쓴이들을 수직적으로 볼 때는 1, 2차 홍주의병과 기미장서의열을 이끌다 옥고를 겪은 김익한·임한주·안병찬·최중식과 같은 홍주 의병의 중심 세대와 그들의 아들, 김복한과 제자 학연으로 묶여 동문수학한 홍성과 충남 역내 청년층이 중심이다.   

셋째, ‘인도’ 문예면은 표기 방식에서 한글로만 적기와 한문으로만 적기, 그리고 한글·한문 섞어적기 세 가지를 다 아울러 중층적이다. 그런데 이런 맵시는 그 무렵 다른 주류 유교계 잡지와 맞세워 놓으면 오히려 혁신적이다. ‘인도’ 발간 무렵 같은 전국 규모 부왜 유교계 잡지들이나 지역 기관지들이 주로 한문쓰기를 주축으로 삼되 필요에 따라 한자한글섞어쓰기를 소극적으로 따른데 견줘 인도는 한글 쓰기나 한자·한글 섞어쓰기 비중이 월등하다.

이렇듯 한글쓰기 비중이 높은 맵시는 여느 부왜 유교 잡지와 갈라지는 인도의 대중적, 민족적 바탕을 암시한다. 인도가 홍성 지역 의병, 민족 유림이 주체인 매체였다는 점에서 표기 방식에서부터 각별했던 셈이다. 갈래 선택에서 인도는 한시, 만필, 야사에서 자유시, 소설, 희곡, 시조, 세태담에 이르기까지 전통과 근대를 다 포괄해 이행기적이다. 창작에서는 한 작가가 여러 갈래에 걸쳐 작품을 선뵈 다갈래적이다. 이런 특성 또한 다른 유교 잡지와 견줘 인도가 지닌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모습이다. 

셋째, ‘인도’의 시는 민족 정체감이나 겨레 사랑을 품은 작품에서부터 막연한 그리움이나 슬픔과 같은 정서로 채워진 작품도 있다. 그런 점까지 포괄하자면 여느 매체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인도의 자유시와 시조의 특징적인 모습은 노골적이든 암시적이든 겨레 의식이나 왜로 식민자를 향한 피식민자로서 민족 경계를 긋고 냉철한 타자적 의식을 담은 시가 중심이다.

그 점은 대한광복단 회원으로서 광복 항쟁을 벌였던 정태복의 시에서부터 백촌, 서해빈인의 시를 거쳐 손재학, 김두용의 작품에까지 두루 나타났다. 이들은 모두 당대 문학사회에 이름을 내건 적이 없는 무명 시인이었음에도 민족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에는 다른 여느 잡지나 작품을 압도하면서 불끈 솟아오르는 형국이다. 유교부식회 회원들이 지닌 드높은 기개와 뚜렷한 의기를 대변하는 민족시의 자장을 잘 보여 주는 작품들인 셈이다.

넷째, ‘인도’ 수필은 이선준(李銑濬, 1910~?)의 것이 대표한다. 이선준은 충남 당진 송산리 사람으로 1935년 아산에서 ‘적색 농민조합’과 밤배움(야학) 활동을 펼치다 이른바 ‘치안유지법’으로 잡혀 옥살이를 했다. 공주 법원에서 1심을 받은 뒤 1935년 서울에서 홍성의 한명식·송창섭과 더불어 징역 2년형을 받은 것이다. 그이는 ‘조선’의 아들로서 겪는 고통과 외로움을 격정적으로 풀어 썼다. 그러한 격정은 그 개인의 것이기도 하면서 그 무렵 지역 계몽 활동에 나섰던 청년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다섯째, ‘인도’ 소설 6편 가운데 5편을 손재학이 썼다. 그것은 축첩과 대지주의 행패, 가난과 같은, 당대 가족이 겪는 비극적 현실을 그렸다. 이러한 손재학 소설은 그 무렵 주류로 볼 때 소박하고 느슨한 점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인도사의 ‘유교 갱생’이라는 목표로 볼 때는 일정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 무렵 우리 현실에서 개선하고 변화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나름대로 펼쳐내고자 한 까닭이다. 우리 현실 속에서 지녀야 할 가정의 보편 윤리가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간접적으로 유교 덕목을 계몽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따라서 개별 작품의 완성도나 짜임의 소박함은 손재학 소설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달리 ‘인도’ 소설의 특성이기도 한 셈이다. 

‘인도’는 유교 진흥을 위해 낸, 지역적 집단적 구심성이 강한 전문 잡지다. 그럼에도 인도는 실국시대 반민족적인 경학원 체제 아래서 선민(選民) 유교, 부왜(附倭) 유교의 틀에 갇혀 있었던 여느 유교 잡지와 다른 민족 유교, 대중 유교를 펼치고자 했다. 그러한 모습에 걸맞게 인도에 담긴 근대문학은 새롭고도 기세 드높은 민족적 응전 방식을 보여 준다. 인도와 인도에 담긴 문학은 홍성 지역의 역사문화 자산에서 더 나아가, 한국 유교의 혁신성과 고투의 응전 방식을 증명하는 특별하고도 뜻높은 출판 문화재다. 하루바삐 온전한 복원과 공개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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