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것을 너무나 힘들어하셔서 다시는 안 오실 줄 알았는데 천석성 어르신이 오셨다. 천석성 어르신은 아들 내외를 따라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셨다. 그렇지만 매일 남장리로 놀러 오신다. 올 때는 버스를 타고 갈 때는 사무장님이 태워다 준다고 하신다.
천석성 어르신은 쑥스러운지 이장님이 불러서 왔다고 하신다. 이장님과 사무장님 두 분만 있기가 적적하니 어르신을 부르신 것 같다. 천석성 어르신은 그만큼 이장님, 사무장님과 마음이 잘 통하는 분이다. ‘이장! 이따 나 좀 봐!’ 하고 유감이 있는 것처럼 말씀을 하시지만 그냥 해보는 소리인 것 같다.
천석성 어르신이 다시 펜을 잡고 그림을 그리시는데 잘 그리신다. 뭐를 잘 그린다고 하느냐면 우선 색채가 선명하도록 꼼꼼하게 칠하신다. 지난번 언젠가도 채색을 잘하셨다.
그런데 계속 불편한 기색을 보이셨다. 당신의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에 맞추다 보니 마음이 편치 않으셨던 것 같다. 하도 막막해하셔서 칸을 나누고 칸마다 색칠을 하라고 한 것이 불편하셨을 것이다. ‘나무를 그리고 싶네!’ 혼자소리처럼 말씀을 하셨다.
종이에 그린 나무는 말씀하시던 그 나무인 것 같았다. 그리고 초가집 한 채. 젊은 날에 어르신 부부와 자녀들 4남매가 살던 집이라고 하신다. 앞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뒤에는 높다란 산이 있다. 산 가운데에는 해가 붉게 떠 있다. 본채로부터 멀리 떨어진 작은 초가 한 채가 있어 여쭈어 보니 ‘측간!’이라고 하신다. 오랜만에 듣기도 했지만 멀리 떨어 트려 놓은 것이 재미있다. 시냇물 흐르고 산은 푸른 봄날의 옛집. 그 속에 살던 때를 그리워하시는 것 같다.
전만성 <미술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