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요!”
상태바
“몰라요!”
  • 변승기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11.11 08: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상담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초보 상담자는 내담자의 ‘침묵’과 ‘몰라요’라는 대답에 난감할 때가 있다.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참고 견디기 어렵다. 또 질문할 때마다 ‘몰라요’라고 한다면 더 이상 상담을 진행하기 힘들고, 상담자도 고민에 빠진다. 그러나 그 ‘침묵’과 ‘몰라요’는 상당한 정보를 담고 있다. 

11월은 입시의 계절이다. 중학생은 고등학교로 고등학생은 대학교로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 임에 틀림없다. 진로상담을 할 때 청소년에게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니?”, “네 꿈이 뭐니?”라고 물어보면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이 없고, 꿈에 대해서도 막연한 대답을 할 때가 있다. 9년 혹은 12년 동안 학교 다니고 다양한 체험과 경험, 수업, 진로검사를 했음에도 자신의 진로를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청소년이 생각보다 많다. 무슨 이유일까?

청소년기 학창시절은 자기를 탐색하고, 잠재력을 보여주는 시간이다. 그러나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으면 하고 싶은 것이 사라진다. 학교와 학원, 가정 경제생활에 참여 등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타인이 원하는 것은 인식하고 이해하지만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각할 시간이 없어 모르게 된다. 경험은 자극이다. 자극을 통해 생각하게 되고 감정을 느끼고 내가 누구인가 알게 되는 과정이다. 그 경험이 타인 중심적이고 협의 되지 않고 일방적이라면 청소년은 ‘몰라요’라고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다.

발달심리학에 몇 가지 쟁점이 있다. 성숙과 학습, 연속성과 불연속성, 결정적 시기, 초기경험과 후기경험 등 대립되는 주장이 공존한다. 필자는 특히 첫 번째 쟁점인 학습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말하고 싶다. 예를 들어, 성격이 급한 사람이 선천적으로 있을지 의문이다. 아이가 보호자에게 요구받는다. 물건을 가져오라고 했을 때, 아이가 빨리 가져오면 보호자가 만약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면 칭찬을 한다. 반대로 늦게 가져오면 비난이나 벌을 받는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그 아이는 자연스럽게 성격이 급해진다. 경험이 자극이 됐고 그 자극이 행동의 유발과 유지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고속도로를 다니다보면 ‘졸음=휴식시간’이라는 문구를 자주 목격한다. 말 그대로 졸음이 오면 휴식이 필요하다는 뜻이고, 어느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청소년과 연결하면 ‘자녀반항=보호자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자녀가 독립 준비를 하는 출발점, 부부관계를 돌아볼 시간’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몰라요=생각이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구체적이지 못하고, 새로운 시도가 두렵기도 하고, 누군가의 도움이 정말로 필요하고, 기대고 싶지만 대상이 없는 상태’ 이렇게 공식을 만들어 본다.

생각도 액션이다. 생각은 방향과 움직임이 자유롭고 모든 행동의 원천이다. 청소년을 상대하는 교사나 보호자는 길을 안내해주기도 하고 청소년 스스로가 좌절이나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그냥 모른 척 기다려주는 때도 필요하다. 올바른 생각을 하려면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할 때도 있다. 타고르는 이런 말을 했다. 교사의 사명은 모든 의미를 밝혀주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여기서 교사와 보호자는 같은 역할을 한다.

청소년이 침묵하거나 ‘몰라요’라고 하면 그를 살펴볼 좋은 기회다. 정말로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하나씩 천천히 풀어가면 된다. 우선, 네가 생각이 많구나. 그 생각을 한번 간단히 말해보렴. 아직 말할 준비가 안 됐으면 내가 기다릴테니 정리가 되면 다시 만나자. 나도 그랬다. 타고르가 말한 정신의 문을 두드리는 과정이다. 제대로 그 문을 두드려면 강력한 액션인 생각이 꿈틀거리고 스스로 준비를 한다. 작은 것을 말하게 하고 그 작은 것을 통해 새롭게 자신에 대해서 인식하는 것이 늘어나면 ‘몰라요’는 ‘시작합니다’로 바뀐다. 정신과 생각의 위력이다. 우리도 타고르처럼 할 수 있다. 용기를 내보자.


변승기 <한국K-POP고등학교 교사·칼럼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