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놀이를 다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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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놀이를 다시보자
  • 조남민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11.1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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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인 ‘넷플릭스’가 제작한 이 드라마는 총 9부작으로 장르는 스릴러다. 빚에 쫓기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에 뛰어든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이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 영화 속에 녹아든 소위 ‘게임’에 관해서다.

원래 ‘게임(game)’은 스포츠에서의 경기나 시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이 드라마에서의 게임은 우리의 전통 ‘놀이’를 기반으로 한 죽기살기용 ‘게임’으로 인식된다. ‘오징어 게임’이라고 하기보다 ‘오징어 찜(홍성읍 쪽에서 주로 사용)’, ‘오징어 가이생(開戰의 일본어, 광천읍 쪽에서 주로 사용)’이라고 했으면 금방 이해했을 것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주최 측이 제시하는 모든 게임을 통과한 후 거액의 상금을 받게 되는데,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현실세계의 모습과 적나라한 인간본성에 대한 성찰이 이 드라마가 갖는 강점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러 게임들은 우리지역에서도 오랫동안 즐겨왔던 것으로, 지금의 중 장년층은 거의 모두가 알고 있는 추억의 놀이이기도 하다.

처음에 등장하는 ‘딱지치기’는 지금도 여러 가지 형태로 이어지고 있지만, 예전에는 두꺼운 달력이나 노트, 전과 표지 등을 이용해서 접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튼튼하고 웬만해서 넘길 수 없는 딱지를 ‘복뗑이(복덩이)’라고 불렀는데, 이런 딱지 서너 개면 동네 딱지를 다 긁어모을 수 있었다. 땅에 치는 딱지 외에도 동그란 형태의 종이딱지가 있었는데 이건 놀이가 아니고 어린이용 노름에 가까웠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지금도 유치원생들의 단골 놀이라고 하는데, 자생 전통놀이가 아니라 일제 강점기 때 들어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놀이는 규칙이 단순해서 다양한 놀이로 변화했으며 다방구, 얼음땡, 술래잡기, 깡통차기 등에 영향을 줬다.

국자에 설탕을 넣고 연탄불에 슬며시 녹이면 설탕물이 되고, 이때 소다를 조금 넣으면 황토색으로 변하면서 달콤한 ‘달고나’ 과자가 된다. 이 설탕과자가 굳기 전에 특정 문양을 찍어놓으면 그 형태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았던 일명 ‘띠기(떼어내기)’다. 그 문양을 그대로 떼어내면 공짜이고, 떼어내다가 문양이 부서지면 돈을 내야 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또 다른 놀이는 ‘줄다리기’인데, 이것은 농경문화에서 발원돼 지금껏 전세계 사람들이 함께하는 놀이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도 그 원형이 잘 보존돼 있고 인근 당진의 ‘기지시 줄다리기’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규모도 웅장하다. 

줄다리기는 지난 1920년대까지 올림픽의 한 종목이었다. 드라마에서도 확인됐지만 이것은 놀이라기보다 과학적 원리가 적용되는 ‘경기’에 속한다.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줄다리기를 직접 해보면 얼마나 힘이 드는 어려운 경기인지 단번에 알게 되며, 며칠씩 끙끙 앓는 게 다반사다. 

여자애들이 ‘공기놀이’나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을 때, 남자애들은 주로 ‘구슬놀이’를 했다. 땅바닥에 구멍을 파거나 던져서 구슬을 차지하는 놀이인데, 너나 할 것 없이 단순무식하게 ‘다마먹기’라고 했다. 이 구슬은 종이딱지와 마찬가지로 ‘재산적 가치’가 형성돼 ‘홀짝’이나 ‘쌈치기’에 자주 등장하곤 했다. 이 홀짝을 잘하는 친구들이 훗날 동전으로 하는 속칭 ‘짤짤이’ 선수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게임은 사실 전통놀이라 보기 어렵고, 막판에 등장하는 ‘오징어 게임’도 합리적이고 기술적인 룰이 아니라, 그저 힘이 센 팀이 쉽게 이기는 게임이기에 누구나 참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재미’나 ‘피구’의 인기가 더 많았던 게 사실이다.

‘오징어 게임’은 이렇게 한국적 놀이 몇 가지에 공상과 허구를 섞어 만들어졌는데, 개봉되자 마자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제작비 250억 원으로 벌어들인 돈이 무려 1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드라마를 모방한 게임이 벌어지는 것은 물론, 이와 관련된 다양한 사회 문화적 현상이 생성되고 있고, 영화 기생충과 BTS(방탄소년단)가 촉발한 이른바 신한류의 재등장에 힘입어 문화산업계가 활기를 띠고 있는 것도, 코로나 시국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오징어 게임’이 추구하는 것이 예술적 목적이든 흥행이 목적이었든지 간에 드라마 한편으로도 세상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여기에 컴퓨터 게임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우리의 전통놀이가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에 다시금 놀라는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곁에서 흔히 보는 사소한 문화현상도, 가꾸기에 따라 얼마든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문화 컨텐츠로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조남민 <홍성문화원 사무국장·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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